언젠가 국내의 한 대기업에서 ‘로테에게 보내는 편지’란 주제로 공모전을 연 적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총에 맞고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남기는 유언을 썼다. 내 글에서 베르테르는 총상의 고통에 괴로워하면서도 스스로 선택한 죽음의 방식에 대해 로테에게 마지막으로 사죄하는 후회의 말을 남겼고, 어쩌면 이때가 나의 후회남주 취향의 서막을 알리는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공모전에는 당연히 떨어졌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에 대한 내 생각은
1. 사랑한다면서 로테도 곤란할 만한 죽음의 방식을 선택한 어리석음 (하필 왜 그 총)
2.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지나치게 깊게 생각하다 혼자 결론 내려버리고 떠난 사람
으로 ‘당연히’ 베르테르는 후회해야 한다고 여겼던 듯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처음 읽었을 때는 초등학교 때였고(매우 얇은 문고판을), 저 공모전은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였지만 단순히 일부 스토리만 (분명 완역이 아니었을 듯 ) 아는 정도에서 베르테르에 대해서 평가하고, 그리고 생각했던 때였다.
이제 다시 읽게 된 베르테르의 고뇌와 슬픔, 그리고 마지막을 마주하면서 너무나도 많이 이름이 알려진 이 고전이 주는 의미는 내 안에서는 조금이라도 베르테르라는 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게 된 것 같다.
“자네 이외의 사람들과의 관게는, 마치 운명이 나와 같은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려고 그렇게 정해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좋지가 못하네.”
친구를 그리워하는 베르테르, 과거를 그리워하는 베르테르, 주변 관게를 걱정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베르테르....
그는 한 소심한 평범한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그리고 첫사랑의 대명사처럼 오해를 사는 베르테르의 이야기는 초반부터 다르게 다가온다.
다시 읽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알게 된 것은 베르테르에게 로테는 첫사랑이 아니란 것이다.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하다가 운명적으로 새로운 사랑인 줄리엣을 만난 로미오처럼, 베르테르도 다른 여인과의 지나간 연애가 있었고, 목가적인 새로운 환경에서 이제껏 자신이 아는 여인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로테’와 마주하게 된다.
베르테르가 로테가 그녀의 어린 동생들과 함께 있는 모습에서 느끼는 충격을 흔히 ‘모성’의 매력으로 여길 수 있지만, 다시 읽어보니 그것은 모성보다는 유연한 강함에 대한 동경과 존경이 아닐까 싶다.
‘무도회처럼 즐거운 놀이를 하는 중에 불행하거나 공포스러운 일이 일어나면 평소보다 더 강력한 인상이 남는 것은 당연하겠지. 우선은 그 대립성이 확연히 느껴지니까.’
“저는 겁이 많은 편이지만 다른 분들에게 용기를 줄 생각에 일부러 대범한 척하다보니 정말로 용기가 생겼어요.”
그들이 처음 만난 날의 무도회에서 번개가 치자 로테는 사람들을 새로운 놀이에 집중시키면서 자신의 용기에 대해서 위와 같이 말한다. 여덟 명이나 되는 동생, 이미 정해져 있는 알베르트라는 약혼자, 사실 이미 모든 인생의 길이 정해져 버린 것과 다름없는 한 소녀이자 여인.
로테라도 왜 힘들거나 두렵지 않을까? 사랑스럽지만 동생이 저렇게 많은데 힘들지 않을 리가 없고, 번개치는 밤이 조금도 두렵지 않을 리도 없다. ‘약혼한 것과 다른 없는’ ‘좋은 사람’ 인 알베르트와의 당연히 다가올 결혼도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로테는 자신의 두려움보다 다른 이들의 공포를 더 염려하고, 그들을 돌보면서 자기 자신의 걱정까지도 받아들이며 맞서나간다. 이른바 ‘햇살 여주...’ 그리고 베르테르라는 도시의 삶과 가벼운 정체성에 익숙한 한 젊은 다른 영혼은 이런 강인함에 이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지만, 태어나는 순간에 어느 정도 인생의 길이 정해져 있고, ‘올바른 시민’ ‘올바른 청년’ ‘올바른 결혼과 인생’ 이 정해진 시대에 한 평범한 인간이 있다면 어떨까.
스스로 부족해 보이기도 하고, 과감하게 행동하길 원했다가 그런 생각이 부끄럽기도 하고, 좀 가볍게도 굴었다가 다시 후회를 하는, 지금이라면 멀리 있는 친구와도 목소리를 듣고 얘기하고, 생판 남들에게라도 익명으로라도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세상이라도 되었다지만 그런 것조차 없는 세상. 베르테르가 마을의 자연을 묘사하는 방식은 더없이 아름답지만 오히려 난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즐기지도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영혼의 고통이 느껴졌다. 차라리 아름답지 않기라도 하다면, 이렇게 척박한 환경이라도 탓하고 – 차라리 모두가 불행하고 엇나간다면, 간혹 튀어오르는 우울이나 열망도 나 하나만 이런 것은 아니라고 위로라고 할 텐데. 베르테르의 세상에서 모두는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고, 자기 자신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로테, 알베르트 외에도 마을의 이런저런 사람들과의 짧은 만남에서도 베르테르는 계속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고, 부러워하고, 동경하다가 결국에는 품에 간직한 열정을 밀어붙이지도, 그렇다고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을 고통 없이 걸을 수도 없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그렇다네. 나는 그저 나그네에 불과해. 세상을 떠도는 순례자에 지나지 않지. 그런데 자네들은 그 이상의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세상과의 괴리감, 세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질투.
그리고 살아서 존재하는 것, 숨 쉬면서 나아가는 것, 그 자체에 괴로워하고 그것을 힘들어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로 얼룩져가는 베르테르의 무너짐은 내 기억보다도 훨씬 더 길고 그의 고통의 길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어디선가 ‘살아있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고통’ 에 대해 원망하는 지식인들의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세상 어느 인간도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님에도, 세상은 인생을 험난하게 보는 어린 영혼이 있다면 그것을 어리석다고 조롱한다.
나는 베르테르가 불쌍하고, 그를 동정한다. 하지만 다시 읽게 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도 내가 걱정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감내하고자 했으나 사정없이 뒤흔들려버린 로테이다.
고통을 파내어버리고 마지막 남은 자유를 찾은 베르테르는 그만의 방식으로 나아갔지만, 슬픔과 우울은 전염되듯이 로테라는 한 소박한 영혼을 잠식했다.
로테와 알베르트의 그 뒤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나에게는 죽어가는 골짜기의 한 여인과, 기차에 몸을 던져버린 다른 여인, 그리고 고통스러운 운명에 미쳐 물속에서 생명을 다한 오필리어가 생각날 뿐이다.
베르테르는 주변의 파괴성에 자신의 영혼이 피페해지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바로 그 ‘영원히 집어삼키고 영원히 되새김질하는 괴물’ 이 되어버리며 영원한 영향력을 남기고 떠나고 만다. 순간 이미 그런 결과를 이해하고 그가 그런 짓을 저질렀을 것이라며 주인공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이것까지는 베르테르에 대한 나의 오해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베르테르가 후회하길 바란다. 로테를 흔들어 놓고 스스로는 희생이라 말하면 만족하여 떠난 그가.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살아 존재하는 인간은 슬프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없어 스스로 파괴자가 되어버린 베르테르의 이야기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슬픔일 뿐 결코 들여다보아서는 안 되는 심연으로, 누구도 그의 슬픔에 손을 내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내 영혼을 가리고 있던 베일이 걷힌 것 같네. 그리고 무한한 생의 무대가, 내 눈앞에서 영원히 입을 벌리고 있는 무덤의 심연으로 바뀌었다네. 모든 것이 다 스쳐지나갈 뿐인데도 자네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