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에 대한 이야기>
"나에게 삶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없다."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연작소설-
이 책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으면서 작년에 보았던 <우리들의 블루스>란 드라마가 생각이 났다. 따뜻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여 14명의 달고 쓰고 떫은 인생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주었다. 그들 각각의 이야기가 서정적이면서 애잔하게 마음에 쓰며들었고, 그들의 특별하지도 않은 평범한 인생 스토리가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많이 공감하면서 그 드라마에 푹 빠졌었다.
이 책 『올리브 키터리지』 또한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해서 미국 메인 주에 위치한 바닷가 작은 마을 크로스비 사람들의 인생 스토리를 열 세편의 단편에 담아내 펴낸 연작소설이다. 연작소설이란 독립된 완결 구조를 갖는 소설들이 일정한 내적 연관을 지니면서 연쇄적으로 묶여 있는 소설 유형을 가리킨다.
이 책에는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모습을 보이지만, 알고 보면 매력있고 마음 따뜻한 여인 올리브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13편에 담긴 그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올리브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인생이라는 큰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간다. 언뜻 보면 서로 관련없는 개개인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모두가 올리브를 축으로 하여 바닷가 작은 마음에서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마치 가족같은 끈끈함과 친밀감을 유지하면서도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도 보인다. 작은 마을이다보니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정도이고 그들의 각각의 이야기 속에는 올리브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들 모두가 올리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올리브 또한 그들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약국을 운영하는 친절하고 자상한 헨리 키터리지의 아내이며, 퉁명스럽고 허점이 많아 보이면서도 강인하고 매력적인 인물인 올리브의 인생 조각들이 13편의 단편들 속에 담겨 있다. 그 조각들을 다 모아서 정렬하면 올리브 키터리지의 인생이라는 퍼즐을 다 완성할 수 있을 듯하다. 아마도 올리브가 과거에 학교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다 이제는 정년퇴임을 했다. 그래서 지금 성인이 된 아이들은 과거 그녀로부터 수학을 배웠다. 그녀는 그 당시 엄격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는지 그녀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자면 올리브 키터리지는 '결코 어떤 일에도 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 이며 크로스비 주민 가운데 결코 우는 모습을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 사람이다. 아들인 크리스토퍼에세는 '극도로 변덕스러운 사람'이다. 그렇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녀에게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연민을 가지고 그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안아주는 매력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올리브를 중심으로 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들도 13편의 단편들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다. <약국>을 통해 친절하고 상냥한 올리브의 남편인 헨리 키터리지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대양을 닮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다. 변덕스럽고 무뚝뚝한 올리브의 모습과는 정반대이다. 그래서 헨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또한 약국에 함께 근무하는 데니즈는 무뚝하고 소리를 질러대며 화를 내는 올리브와 달리 헨리에게 상냥하고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헨리에게는 역시 무뚝뚝한 올리브 밖에 없나보다. 그가 데니즈에게 친절을 베푼 것은 그의 착한 성격에 기인하는 것일뿐 그이상의 의미는 없는 듯하다. 나중에 헨리는 뇌졸증을 앓게 되면서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죽게 된다. <약국> 에서 보이는 헨리는 그의 생에서 가장 행복한 중년의 모습이어서 헨리의 쓸쓸한 죽음을 생각해볼면 참 마음이 아프다.
<밀물>의 주인공인 케빈은 어렸을 때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죽음을 겪은 후에 삶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희망을 찾아서 새로운 곳으로 떠나보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신이 그 곳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러 찾아온 크리스비 마을에서 자신의 은사인 올리브를 만나게 된다.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올리브 또한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녀로부터 마음의 위로를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페티를 구하게 되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피아노 연주자>의 주인공인 앤젤라는 옛 사랑의 그림자를 붙들면서 미련을 못 버리며 살아간다. 음식점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연주자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앤젤라에게 옛 연인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예전 연인이 더이상 그녀의 연인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과거의 사랑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는지, 왜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는지 생각해본다. '자신이 뭔가를 너무 늦게 깨달았음을' 알게 되지만,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는 것도 인생임을 새삼 깨닫는다.
<여행 바구니>의 주인공인 말린은 와병 중 남편을 잃어서 장례식을 치른다. 그의 죽음 전에 병이 나으면 함께 여행을 가자며 함께 싼 여행 바구니를 보면서 자신의 잘못된 행동과 미련을 책망하게 된다.
<굶주림>의 주인공인 하먼은 다정함을 찾아볼 수 없는 무뚝뚝한 아네에게 지쳐서 '빈둥지증후군'을 겪는다. 사랑은 이처럼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걸까.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인 보니를 두고 데이지 포스터에게 마음이 끌리니 말이다. 하먼의 이야기를 통해 외로운 노년의 삶과 무미건조하고 감정이 메말려버린 결혼생활의 한계를 보게 된다. 이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삶의 생채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뼈와 마찬가지로 서로 얽혀 직조되며 어긋한 뼈는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p. 187
어떻게 보면 올리브의 인생 또한 평탄하거나 마냥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다른 길>에서 그녀 나름대로 사랑을 쏟으며 애지중지 키운 아들인 크리스트퍼가 잘난 척 하는 의사인 수잔과 결혼한다. 올리브와 헨리는 아들을 위해 아들의 신혼집을 미리 지었지만, 아들 부부는 그런 그들의 기대를 져버린 채 서부 해안으로 가버린다. 아들이 참한 여자와 결혼해서 자신들과 가까이 살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길 바랬던 올리브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튤립>에서 헨리는 그 충격 때문인지 뇌졸증으로 쓰러져 요양원에 입원하게 된다. <튤립>에서그로 인해 올리브는 아들로 인한 끝없는 상실과 헨리의 입원으로 인한 외로움을 견디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불안>에서는아들과 올리브의 모습을 비춰준다. 헨리는 요양원에서 외롭게 쓸쓸하게 죽게 되고 아들인 크리스토퍼는 수잔과 이혼하고 아이가 둘 씩이나 있는 여자인 앤과 재혼해서 뉴옥에서 살게 된다. 어느 날 올리브는 아들인 크리스퍼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아들네 집을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방문을 통해 아들과의 사이를 개선시킬 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간 올리브는 아들과의 관계 회복이 힘들고 이미 많이 어긋나버린 아들과의 거리를 실감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인 <강>에서는 혼자 산보하다가 쓰러져있는 잭 케니슨을 발견하게 된다. 올리브는 "혼자 죽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하며 자신 곁에 있어달라는 잭 케니슨의 부탁에 따라 그와의 만남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배우자를 잃었다는 공통점 아래 죽음을 향해 가는 노년임을 깨달으며 삶의 회한을 느낀다.
조용히 그의 곁에 앉으면서, 잭의 눈빛에서 올리브는 두려움을, 손을 내미는 여린 마음을 보았다. 그리고 손을 펼쳐 그의 가슴에 대고 쿵쿵 뛰는 심장을 느껴보았다. 다른 모든 심장처럼 언젠가는 멎을 심장을. 그러나 그 ‘언젠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햇살이 따스한 작은 방의 고요뿐. 그들은 이 자리에 있고, 그녀의 몸은, 늙고 뚱뚱하고 살갗이 축 처진 몸은 그의 몸을 처절히 원했다. 헨리가 죽기 전 몇 년 동안 자신이 이렇게 헨리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올리브는 눈을 감았다.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 이 남자의 곁에 누우며, 그의 손을, 팔을 어깨에 느끼며 올리브는 생각했다. 오,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걸, 다시 한번 내 차례가 돌아올 타르트 접시처럼 사랑을 경솔하게 내던져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른다. 아니, 사랑이 눈앞에 있다면 당신은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녀의 타르트 접시는 헨리의 선량함으로 가득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올리브가 가끔 부스러기를 털어냈다면, 그건 그녀가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알지 못하는 새 하루하루를 낭비했다는 걸.
- p.483
"올리브는 꼭 눌러 붙여놓은 스위스 치즈 조각을, 이 결합이 지닌 숭숭 난 구멍들을 그려보았다. 삶이 어떤 조각들을 가져갔는지를.
그녀는 눈을 감한다. 지친 그녀는 파도를 느꼈다. 감사의, 그리고 회한의 파도를.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햇살 좋은 이 방을, 햇살이 어루만진 벽을, 바깥의 베이베리를.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
-p. 484
죽음을 향해 노년의 삶을 살고 있지만, 아직 올리브는 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삶의 회한을 느끼면서도 지금껏 살아온 세상이 힘들었을지라도 올리브는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다. 여전히 올리브는 세상을 살고 싶은 것이다. 그녀의 강한 삶의 의지가 느껴진다.
이 이야기에도 이 책 속에는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저마다 가슴 속에 사연과 삶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평범함의 미학'을 말하듯 이 책을 통해서 평범한 인생 속에 숨겨진 인생의 진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바닷가 마을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가슴절절하고 시린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 또한 되돌아보게 된다.
또한 노년의 삶을 살면서 사랑했던 배우자 마저 먼저 떠나게 되면서 외롭고 쓸쓸함을 느끼는 올리브를 보면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특히 배우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노년을 맞아야할지에 대해 생각도 해보게 된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서로 관계를 맺으며 얽혀서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13개의 단편에서 올리브의 삶이 크리스비 마을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듯, 우리 또한 그렇게 서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야함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