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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는 새들이 넓고 파란 물 위를 낮게 스치듯 날고 있다”라고 말할 때 이 이미지는 저 아래 호수에서 벌어지는 일을 대략적으로 알고 싶을 경우에 유용하다. 내가 “조심해, 위에서 피아노가 네 머리로 떨어지려고 해” 하고 말할 때, 나무와 상아와 금속의 집합체를 ‘피아노’라고 부르고 당신 목 위에 있는 그것을 ‘머리’라고 부르고 저 높은 곳의 방향을 ‘위’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당신이 늦지 않게 피아노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 바라건대는.
-알라딘 eBook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트럭이 멈춘다.\n“태워드릴까?” 친절한 농부가 말한다.\n“꺼져 씨발!” 에이전트가 소리친다.\n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잘못되고, 그 뒤에 나는 말하며, 나와 마찬가지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나의 잘못이 가닿고,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우리 둘이 있는 셈인데,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행동 없이 생각만 하는 것은 견딜 수 없고, 그래서 행동을 하니 상황은 더 나빠진다.
-알라딘 eBook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우리는 코가 얼굴 없는 코인 동시에 얼굴 있는 코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순간순간 구문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둘 다 아니거나 둘 다이다.\n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언어가 자신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인정하는 나라에서 잠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언어는 한계가 있는 소통 체계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데는 적합하지만 더 높은 수준의 사용 영역에서는 불안정하다. 언어는 자신이 말할 권리가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언어를 이용하여 실제로 존재하는 것 또는 심지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알라딘 eBook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딱히 존재하지는 않는 세계를 말로 만드는 것. 언어는 의미에 가깝게 다가가려 하지만 때로는 목적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굴며 우리를 기만하기도 하는데, 이는 의도적이기도 하고(어떤 계획이 있는 사람이 우리가 행동을 하도록 언어를 비튼다) 의도적이지 않기도 하다(우리는 어떤 생각을 염두에 두고 진지한 주장을 구축하면서 우리 생각이 진실처럼 보일 언어를 찾는데, 그 생각이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언어라는 얇은 직물을 너무 넓게 펼쳐서 우리 주장의 진실하지 않은 부분까지 덮어버린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n언어는 대수代數와 마찬가지로 오직 일정한 한계 내에서만 유용하게 작동한다. 언어는 세계를 재현하기 위한 도구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언어를 세계 자체로 착각하는 쪽으로 넘어가버린다.
-알라딘 eBook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모든 영혼은 광대하며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고 싶어 한다. 영혼에게 적절한 도구가 허락되지 않으면(그리고 우리 모두 태어날 때는 그것이 허락되지 않으며,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허락되지 않는다)… 시詩가 튀어나온다. 즉, 진실이 제한된 출구로 뚫고 나온다.\n사실 그게 시의 전부다. 뭔가 이상한 것, “고골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나보코프는 말한다. “하지만 천재는 늘 이상하다. 독자가 삶에 대한 생각을 멋지게 발전시켜 주는 지혜로운 오랜 친구로 여기며 감사해하는 작가는 건전한 이급 작가에 지나지 않는다.”
-알라딘 eBook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그게 튀어나오는 것. 정상적인 말, 그게 넘쳐흐르는 것. 세상을 제대로 다루려 시도하다 실패한 것. 시인은 언어의 담장에 자신을 던지고 거기에 부딪혀 튀어나옴으로써 언어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알라딘 eBook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고골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나보코프는 말한다. “하지만 천재는 늘 이상하다. 독자가 삶에 대한 생각을 멋지게 발전시켜 주는 지혜로운 오랜 친구로 여기며 감사해하는 작가는 건전한 이급 작가에 지나지 않는다.”
-알라딘 eBook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우리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진지하며 대략 우리가 믿는 것과 비슷한 것, 즉 책임감, 진실, 친절 등을 믿는 듯하다. 그럼에도 매일 밤 뉴스에는…. 또 역사책을 보면 모든 시대가…. 잔인한 일이 있다는 건 어딘가에서 그 일을 누군가가 저질렀다는 뜻이고, 타락과 절망의 이야기가 있다는 건 그게 누군가의 삶(바로 지금 누군가의 삶)이었다는 뜻이다.
-알라딘 eBook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데버라 아이젠베르크Deborah Eisenberg는 그레고어 폰레조리Gregor von Rezzori의 고전 《반유대주의의 회고Memoirs of an Anti-Semite》에 관해 쓰면서 소수의 악한 사람이라도 “안전한 집의 창밖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흘끔거리는 다른 많고 많은 사람의 수동적 지원”만 있으면 얼마든지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그런 수동적인 사람들이 저지르는 죄들을 나열한다. “부주의, 형편없는 논리, 일상적인 속물근성, 사회적 혹은 지적 무관심.”
-알라딘 eBook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
아름다운 여름날 아침에 집 밖으로 걸어 나가본 사람은 누구나 그 순간의 진실이 그저 “나는 6월 어느 날 아침 집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상임을 알고 있다. 이 문장에는 뭔가 빠져 있는데, 바로 집 밖으로 걸어 나가는 ‘나’다. 그날 아침이 어떤 종류든 진짜 아침처럼 느껴지려면 어떤 마음에 찾아와야 한다.
달리 말해 목소리는 그냥 장식이 아니다. 진실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코〉에서 우리는 서술자가 공무원과 하급 관리들의 세계 출신이라고 느끼고, 그의 목소리에서 그것을 들으며, 이 이야기는 그 사실로부터 도움을 얻는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서술되면서 〈코〉는 추가로 진실, 또 즐거움의 차원을 갖게 된다.
-알라딘 eBook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