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범한 인간의 조용하고 고독한 삶에 대한 성찰"
존 윌리엄스의 < 스토너>를 읽고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 오늘도 자신만의 길을 당신을 위한 이야기-
한 평범한 인간의 고독하고 절망적인 삶의 이야기가 50년이 지난 후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잊지못할 인생책으로 자리 매김되었다. 바로 그 이야기는 존 윌리암스 작가의 대표작인 『스토너』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인생 이야기이다.
이 책 『스토너』는 1965년 미국에서 출간된 후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가 50년이 지난 후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출판계와 평론가,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내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책을 '인생책'이라고 말하며 극찬하고 있는 것일까. 왜 사람들을 이 책을 추천하고 이 책이 아직도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을까.
이 책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문학을 사랑했으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던 한 평범하고 내성적인 남자인 '윌리엄 스토너'의 소박한 일생을 다룬 이야기이다. 한 평범한 인간의 고독하고 절망적인 삶이 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일까. 그렇게 특별하게 보이지도, 대단해보이지도 않는 한 남자의 삶은 언뜻 보면 실패한 인생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세상과 절대 타협하지 않고, 우직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대단한 성공도, 엄청난 부도 바라지 않고 그저 문학을 사랑하고, 가르치는 것을 사랑한 한 남자 윌리엄 스토너! 이 책 『스토너』를 통해 그의 삶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윌리엄 스토너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열아홉 살에 농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처음에는 학문의 뜻과는 상관없이 배움의 길을 선택했지만, 영문학개론 수업에서 만난 셰익스피어의 73번째 소네트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게 된다. 그때부터 스토너는 문학을 사랑하게 되고 영문학도의 길을 거쳐 더 나아가 가르치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영문학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그는 농부의 길이 아닌 영문학도의 길을 택해서 영문학교수가 된다. 여기까지 보면 그의 인생은 성공한 삶처럼 보인다. 교수가 되고 사랑하는 여인 '이디스'와 결혼해서 가정도 이루며 나름 행복한 삶을 살기도 한다.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고, 논문연구와 저서 집필에도 열정을 쏟아 학문에 대한 성취도 거둔다.
그런데, 왜 그는 결국 그렇게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을까. 만약 스토너가 이런 탄탄대로의 성공가도를 달렸다면 스토너의 삶은 우리에게 별다른 감동을 선사해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평생에 걸친 고독하고 쓸쓸하고 절망적인 삶이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과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해준다. 단순히 그의 삶 속에서 몇 번의 성공과 실패가 아닌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적인 삶의 태도와 자세가 우리가 그의 삶에 귀 기울이는 이유일 것이다.
문학에 대한 열정과 교육자로서의 삶으로 그는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의 삶은 '불행' 그자체였고 '실패'에 더 가까워보이기도 한다. 그는 학자로서 명성을 떨치지 못했고,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인정을 받지도 못했으며, 사랑에 성공하지도 못했다. 사랑하는 딸에게도 제대로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그는 인생의 모든 면에서 실패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쓸쓸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보면 드는 생각은 안타까움과 답답함이다. '왜 그렇게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을까', 왜 그렇게 답답하게 굴까.' 등 그가 삶의 위기에 당면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안타까워 하고 마음 아파했다.
특히 대학원생 찰리 워커와 관련하여 영문학교수인 로맥스와 평생 갈등 관계애 놓이면서 영문학에 대한 그의 사랑과 열정도 모두 다 빼앗겨버리게 되는 그 시점은 아마 그의 인생의 반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건 이후로 그는 일과 사랑에서 패배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무시당하고 절망적인 삶을 살 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스토너는 이런 억울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남을 탓하지 않고 아무 상관이 없는 듯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마치 그것이 나의 일이 아닌 듯, 그 일은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듯 말이다. 아내인 이디스에게 모든 주도권을 다 빼앗기고, 그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무시당하면서도 아내를 비난하지 않고 그녀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다. 대학에서조차 억울한 일을 당하는데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했다.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마치 있는 듯 없는 듯한 조용한 그림자같은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런 무기력하고 조용한 삶 속에서 잠시나마 캐서린과의 사랑으로 욕망의 불꽃을 태우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녀와의 사랑마저도 포기해야 했다.
왜 스토너는 그렇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내어주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을까. 나쁘게 말하면 왜 그렇게 '바보같은 삶'을 살았던 것인가. 왜 그는 불평 한번 제대로 못하고 그렇게 당하고만 산 것일까. 왜 그렇게 인내의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렇게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그런데 마치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듯 책 속에서 스토너의 대답을 듣게 된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p. 390
이 질문을 나 자신에게도 던져본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는가?" '너는 너의 삶 속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스토너에게 온갖 질문과 불평을 하던 나에게도 스토너의 질문을 던지니, 갑자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인생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스토너가 살아온 삶이 바로 우리가 사는 삶이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도 스토너처럼 그런 바보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이라고 별 수 없이 평범하지 않은가.
스토너의 삶의 궤적을 함께 따라 가면서 그와 함께 울고 웃었다. 그의 삶만큼 그의 죽음조차 조용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p. 392
작가는 인터뷰에서 스토너를 영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나는 스토너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져본다. 겉으로는 슬프고 불행해보이는 삶인데, 그런 삶 속에서 스토너가 본인이 만족하고 스스로 행복했다면 그 자체로 성공한 삶이지 않을까. 그의 삶의 모습만 보고 불행한 삶이다, 비참한 삶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위선과 오만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스토너 주변의 사람들 삶 또한 그리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물론 스토너도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지만, 그의 아내인 이디스도 평생 외롭고 쓸쓸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겉으로는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고 스토너를 괴롭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고 남편과 사별까지 하며 사는 딸 그레이스의 삶 또한 너무 불행해보이고 비참해보인다. 그녀는 술에 절어 하루하루 연명해가며 어떤 희망도 없어 보인다. 스토너의 연인이자 사랑이었던 캐서린은 과연 스토너와 헤어지고 행복했을까. 스토너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비난한 로맥스는 어떨까. 그의 삶은 성공한 삶일까. 스토너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친구이자 그의 조력자이자 문리대학장인 고든 핀치가 그래도 제일 인간성이 나아보인다. 그나마 스토너를 아끼고 챙겨준 사람은 그가 아닐까.
그들 모두가 그렇게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것은 전쟁 때문이었을까. 세계대전과 같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고자 그들은 그토록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인가.
그런 삶을 살면서 스토너는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스토너 본인의 삶과 함께 스토너 주변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아닐까. 그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5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스토너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