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을 시작하기도 전에 읽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악명 높은 학기말 (변명같지만 변명을 해야겠다.) 집채 만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서류 처리,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서류작업을 하느라 누구도 읽지 않을 멘트를 작성하고 보고서를 쓰는 일은 죽는 줄 알면서 멈추지 않는 일을 하는 것과 비슷한데, 그런 시기를 지나야만 했다. 그것은 책을 한 줄 조차 읽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하다. 기쁨도 없고 보람도 없는, 태곳적 그 누군가에 의해 만든 생활기록부라는 기록작업을 위해 내 시간과 에너지를 가져다 바치는 일을 하느라 한 동안 덮어 두었다가 이제 방학이 되어 카페에 앉아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굶주린 사람처럼.
반전의 반전을 계속하면서 도대체 진실은 뭐지? 아니, 사실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야? 하면서 읽어 내려갔던 것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이야기가 궁금해 손을 놓을 수 없어 반나절만에 끝낼 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고딕소설이라 하면 어느 정도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 꼭 남게 되는 찝찝함, 이도 저도 아닌 열린 결말이 주는 개운치 않음을 기대했던 것도 같다.
<대불호텔의 유령>은 그런면에서 약간 비껴간 감이 있다. 결말이 해피해서, 정리가 비교적 명확해서 이 소설이 나를 사로잡을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만약, 박지운의 이야기에서 글을 마치든지, 내가 읽기를 그만둔다든지 하면 영원히 이 소설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 했다.
내 머리와 가슴을 때린 부분은 오히려 1부의 처음 부분 몇 장이다. 서구권에서 흔히들 한의 민족, 원한을 간직한 채 업을 대물림하는 것으로 우리를 본다고 한다.합리적 이성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정서라는 둥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때론, 우리 자신도 우리를 그렇게 보는 드라마, 뇌피셜 가득한 문학 평론같은 글도 읽은 것도 같다. 그리고, 악의, 원망, 질투같은 것들이 생명을 얻어 이 사람 저 사람, 이 세대 저 세대를 옮겨다니면서 생명력을 유지한 채 불가살처럼 산다고 한다. 겉모양만 바꾼 채.
소설가 주인공이 듣는다는 소리를 그린 장면이 좋았다. 가끔, 나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대부분 스스로 다짐하거나, 자조, 원망 섞인 푸념같은 것들이다. 또, 가끔은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입밖으로 살짝 소리내 본 적도 있다. 머릿속에서만 들리는 스스로 내는 소리와 음성을 통해 나오는 소리는 천지 차이, 전혀 다른 차원 처럼 차이를 느낀다. 일단, 입밖으로 내 뱉으면 스스로 민망해서 다시는 머릿속으로 그 소리를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잘 표현하지 않는 성향의 사람이거나 주로 여성들(우리 엄마도 어릴 적 누군가를 저주하는 듯한 혼잣말을 했고 나는 그걸 들으며 오싹했던 기억이 난다. 가만 보니 할머니도 그랬던 것 같다. '아이구 내 팔자야' 같은.)이 내는 '약한 소리'라는 걸 잘 알아들었다. 억눌린 감정, 기억, 욕구들이 내는 소리들이 아닐까? 조현병의 전조 증상이라고도 하는데, 잘 모르겠다.
요즘은 그런 감성들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너무나 세련되고 깔끔하고 스무스하기 때문이다. 원한 섞인 이야기들이 이제 점차 이 땅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표지 색도 마음에 들고 고딕스런 분위기의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자개장 느낌이 나는 것도 마음에 든다. 진짜 '대불호텔'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나는 걸 보면 작가는 성공한 것 같다. 거기서 유령을 목격하고 싶은 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