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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리아 로즈(일명 씨씨)는, 엄마의 멍한 눈빛과 빨간 구두를 일곱 살 때 처음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씨씨는 종종 (그리고 시간이 갈 수록 더 자주) 엄마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엄마는 이상했다. 씨씨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행동도 종종 했는데 출장을 자주 다니는 아빠는 그런 엄마를 방치했고 씨씨는 그런 엄마를 챙기다가 스스로 점점 지쳐간다. 엄마의 이상행동은 이웃들에게 비웃음을 샀고 씨씨의 학교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학교에서 씨씨는 친구 없이 항상 혼자였고 책과 옆집사는 오델할머니만이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런 나날들의 연속이던 어느 날, 사고가 발생한다. 차사고였고 피해자는 엄마였다.
씨씨는 장례를 치르는 동안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알 수 없었고, 그 지경에 이르도록 놔둔 아빠가 미웠다. 엄마를 묻고 온 그날 밤, 마법처럼 집에 투티 할머니가 찾아온다. 투티 할머니는 씨씨의 외할머니의 여동생이었는데, 아빠에게 씨씨를 자기집에서 키우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고 아빠는 항상 그렇듯 씨씨의 의견은 제대로 듣지 않고 혼자 결정했다. 씨씨는 아빠를 떠나서 슬픈 것이 아니었다. 오델할머니와 떨어지는 것이 슬픈 것이었다. 그런 씨씨에게 오델할머니는 이야기한다.
p.70
인생은 변화로 가득차 있단다, 아가. 그래서 우리가 배우고 자라는 거야.
투티할머니와 함께 북부 서배너라는 곳으로 가게 된 씨씨. 그곳에서 씨씨는 어린시절 받았어야 했으나 받지 못했던 보호를 투티할머니를 통해 받는데, 엄마이야기를 자꾸 꺼내는 할머니보다 오히려 유색인 가정부이면서 가족처럼 지내는 올레타와 가까운 친구가 되어간다. 유색인이라는 이유로 말도 안되는 차별을 당하는 올레타와 그의 친구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서 긍정적으로 삶을 사는 방법을 배운다.
p.262
"어때, 나쁘지 않았지? 넌 날마다 조금씩 더 강해질 거야." (중략)
"내가 한 말을 명심해. 그 누구도 네 자유를 빼앗지 못하게 하렴."
p.304
"하지만 눈을 뜨면 모든 것에서 축복을 발견할 수 있단다. 내가 요리를 잘하는 것도 그 때문이야. 나는 평생 부엌에서 일을 했어. 학교를 마쳤더라면 좋았겠지만, 나 자신을 불쌍히 여겨봤자 아무 소용 없는 일이야. 인생은 그런 거야."
그렇다고 씨씨가 자신의 어린시절과 쉽게 화해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빠를 향한 미움을 서서히 걷어내고, 엄마의 마지막날 함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고, 엄마가 아픈 와중에서도 자신을 사랑했었음을 기억해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엄마와 어딘가 닮은 듯 하면서도 미치지는 않은 옆집 이웃 굿페퍼 부인과 친해지며 씨씨는 미친 것과 괴짜인 것의 경계를 고민한다. 아빠와 투티할머니 몰래 백과사전에서 찾아본 '정신증'에 유전적인 요인이 작용한다는 걸 안 씨씨의 마음 한 켠엔 '나도 엄마처럼 결국 미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존재하고 있어서 엄마가 집착했던 하얀드레스와 비슷한 파티드레스를 투티할머니가 사오자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다. 또래친구또한 한번도 있어본 적 없기에 새로운 학교에서도 외톨이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런 모든 두려움에서 한 발짝 용기있게 뗄 수 있게 되는 건 올레타와 투티할머니, 오델할머니의 격려 덕분이다.
p.162~163
"그래, 누구나 자신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걸 찾아야 해. 중요한 건 행동으로 옮기고,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거야. (중략)
인생은 우리에게 놀라운 기회를 주지만,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회를 알아보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어." (중략)
네 가슴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 따뜻한 것이 반짝거리는 게 느껴질 거야. (중략)
그 불꽃에 부채질을 해야 해."
p.447
"어떤 사람이 지혜롭다면, 그건 세상에 나가서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란다. 지혜는 경험에서 나와. 매일매일이 선물이라는 걸 깨닫고 그걸 기쁘게 받아들이는 데서 나오지. 넌 책을 많이 읽었고 덕분에 아주 똑똑하지만, 세상의 어떤 책도 진짜 지혜를 주진 못해.
나는 이미 씨씨의 나이는 훌~쩍 지난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어릴 적의 상처를 극복하고 스스로 방향을 정해 나아가는 결말을 가진 이른바 '성장소설'을 좋아한다. 나이가 드니 이런 소설을 읽으며 나는 씨씨가 아닌 책 속 나오는 멋진 어른들의 모습에 더 감정이입이 된다. '나도 저렇게 멋지게 나이들어야지. 그래서 혹시 주위에 흔들리는 청춘들이 있다면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타이밍 좋게 팔목 잡아줄 수 있는 어른이 된다면 참 행복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맞다. 책은 책이다. 책을 읽었다면 나머지 시간은 책을 통해 고민한 생각들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하루를 폴폴 거리며 움직여야 한다. 내가 무기력해지려고 할 때마다 항상 생각하는 말, 움직이지 않는다면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