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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2024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_김남숙 작가: 잊지 못하는 사람과 용서할 수 없는 사람
파주라는 도시는 건조하고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이 든다.
이 이야기는 나의 남자친구인 정호와 어느 날 문득 정호를 찾아온 그의 군대 후임 현철의 이야기다.
'나'는 갑자기 찾아온 현철과, 현철을 보고 놀라면서 그를 꺼리는 정호의 태도를 유심히 관찰한다.
현철 역시 정호의 옆에 있는 '나'를 의식하고 '나'의 옆에 있는 정호에게 말한다, '나도 이제 당신을 괴롭히겠노라고'
군대를 경험하지 않은 '나'의 시선에서, 아니 군대를 경험한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아도 현철과 정호의 관계는 이상하다.
정호는 계속 욕을 하면서도 현철을 꺼려하고 무서워하고 그러면서도 그의 말을 거역하지 못한다.
현철 역시 정호를 보는 것이 편하지 않음에도 그는 계속해서 정호를 찾아오고,
'나'에게 모든 사실을 밝히지는 않으면서도 자신이 정호에게 '복수'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두 남자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소설은 '나'의 생각을 알려주기 보다는 현철의 행동이나 외양에 대한 묘사를 대신한다.
귓가를 긁적이는 현철, 엉성한 걸음걸이, 어딘가 혀가 짧은 것 같은 말투와 투명한 눈빛.
정호의 죄에 대한 벌로 돈을 요구하는 현철과 그런 그를 욕하면서도 거부하지 못하는 정호,
현철을 보는 내내 살이 마르고 신경질적이 되어가던 정호는,
현철이 정한 복수의 기간이 지나고 파주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온 뒤부터 다시 살이 찌고 쾌활해지고,
그런 정호를 보는 나는 그에게 역겨움을 느끼면서 어느새 현철의 습관대로 귓가를 긁는다.
정호의 죄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찾아온 현철
하지만 정호는 현철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보다는
자신의 비겁하고 악한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현철을 보는 게 불편할 뿐이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그를 대신하여 이상하게도 그의 죄책감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어버린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현철은, 사람들을 쳐다보지 못하고 그들 속에 속하지 못하고
외롭고 우두커니 혼자 앉아 포켓몬고 게임을 할 뿐이다.
게임 속 캐릭터들이 친절하고 착하고 순해서 좋아한다는 현철은
어쩌면 그 캐릭터들처럼 착하고 순하기만 해서
현실이 아닌 게임 속에서 살고 싶을지도 모른다.
현철은 정호에게 돈을 요구하는 자신이 '비열하고 역겨워도' 그렇게라도 꼭 보상 받고 싶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 방법은 현철이 과거의 괴로움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동시에 정호가 불가능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파주라는 장소는 정호에게 자신의 과거를 보게하고
잊었던 죄책감을 떠올리게 하고
어쩌면 자신의 양심을 마주할 수 있는 장소
그래서 정호는 다시는 그 재수없는 장소에 가고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정호의 옆에서 '나'는 정호가 버린 죄책감을 느끼면서
현철이 했던 말 중에 가장 좋았던 말을 반복해서 떠올린다.
가끔씩은 보게 될 거야,
가끔씩은 보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