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쪽
가까운 전철역 뒤편의 죽집까지 걸어가 가장 부드러워 보이는 잣죽을 시켰다. 지나치게 뜨거운 그걸 천천히 먹는 동안, 유리문 밖으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육체가 깨어질 듯 연약해 보였다. 생명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그때 실감했다. 저 살과 장기와 뼈와 목숨 들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고 끊어져버릴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그렇게 죽음이 나를 비껴갔다. 충돌할 줄 알았던 소행성이 미세한 각도의 오차러 지구를 비껴 날아가듯이. 반성도, 주저도 없는 맹렬한 속략으로.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