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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고백할까
고백은 결핍과 부재로부터 출발한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 자신에게 없는 것,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 그로 인해 저지른 죄의 목록들이 고백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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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고백하는가라는 물음의 답을 찾고자 할 때 먼저 떠오르는 시인은 함민복이다. 가난으로 인한 욕망으로부터의 소외는 그의 주된 시적 주체이자 소재다.
박수소리1
함민복
박수소리. 나는 박수소리에 등 떠밀려 조회단 앞에 선다. 운동화 발로 차며 나온 시선, 눈이 많아 어지러운 잠자리 머리. 나를 옭아매는 박수의 낙하산 그물, 그 탄력을, 튕, 끊어버리고 싶지만, 아랫배에서 악식으로 부글거리는 어머니, 오오 전투 같은, 늘 새마을기와 동향으로 나부끼던 국기마저 미동도 않는, 등 뒤에 아이들의 눈동자가, 검은 교복에 돋보기처럼 열을 가한다. 천여 개의 돋보기 조명. 불개미떼가 스물스물 빈혈의 육체를 버리고 피난한다. 몸에 팽그르 파르란 연기가 피어난다. 팽이, 내려서고 싶어요. 둥그런 현기증이, 사람멀 리가, 전교생 대표가, 절도 있게 불우이웃에게로, 다가와 쌀푸대를 배경으로, 라면박스를, 나는 라면 박스를, 그 가난의 징표를, 햇살을 등지고 사진 찍은 선생님에게, 노출된, 나는, 비지처럼, 푸석푸석, 어지러워요 햇볕, 햇볕의 설사, 박수소리가, 늘어지며, 라면 박스를 껴안은 채, 슬로우비디오로, 쓰러진, 오, 나의 유년!! 그 구겨진 정신에 유리 조각으로 박혀 빛나던 박수소리, 박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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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미덕은 고백의 절묘한 순간포착과, 고백의 구체성과 사실성과 정직성에 있다. 체험한 자만이,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만이, 오래 들여다본 자만이 의미 있는 고백의 내용을 포착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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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 고백을 일삼는 ‘노출증 환자’나 ‘자해 공갈단’이라는 냉소적 지적을 면하기 위해 시인은 자신의 삶 속에 깃든 수많은 실패와 상처의 흔적을 직시하고, 그것을 토로해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내보임으로써 현재의 자아를 점검하고 미래의 실존적 의미를 물어야 한다. 웅숭깊은 존재 탐구를 겸비한, 시적 성찰로서의 고백은 그렇게 탄생한다. (pp.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