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든다.'
『각각의 계절』이란 제목도 그의 작품 중 윗 문장을 모티브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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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의 최근 단편 소설 7편을 옴니부스 형식으로 제작·발행된 『각각의 계절』은, 독립된 소설들 사이에서 공통된 내러티브가 묶여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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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풍기는 작가의 전반적인 의도를 알기 전에, 나는 각 작품이 어떤 계절을 나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어떤 힘을 쓰고, 어떤 식으로 계절을 맞길래 분리된 작품을 하나의 제목으로 묶었는지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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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은 후의 느낌은, 단편마다 맞았던 계절이 '각각'이라고 분리하기에는 비슷한 형태로 오버랩되었다는 것.
심지어 인물들도 작품의 틀에서만 분리될 뿐, 하나같이 서로 일면식이 있었던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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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이렇게 느꼈을까? 문학·시대·역사 등 기본 배경지식을 모른다고 차치하더라도, 떠오르는 일반적인 단상들을 몇 가지 서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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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먼저 주가 되는 인물들은 한 편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이다(50대나 60대로 예상되는). 그러나 남성이 주된 화자인 한 편조차 중년 여성의 이야기가 주요 소재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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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첫 작품부터 끝 작품까지 일관되게 따옴표 없는 대화체로 서술하여 일반문장과 구분해 놓지 않은 것은, 화자들끼리 내뱉는 말조차 마치 이야기를 끌어가는 제3자(주체)의 독백처럼 느껴졌다. 이는 '작가'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체', '독자' 세 영역이 합쳐지며 결국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세계를 좀 더 적극적으로 보게된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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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각 작품에서 허무, 위기, 불안, 우울, 공황 등의 감정 상태를 각기 다른 서사와 방식으로 표현하였으나, 결국 5~60대 중년 여성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의 어머니, 동생, 언니, 친구, 이모 등 그 누구를 통해서 말이다(더불어 작가의 나이대와 시대상을 떠올려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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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억을 매개로 과거-현재 연결, 현재의 단서로 과거 반추, 매회 비슷하게 등장하는 담배, 운전, 술 등의 요소는 인물과 스토리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는 것이다(이쯤 되면 작가가 큰 주제를 예상하고 그간 단편을 뽑아냈나 싶을 정도... 작가의 큰 그림인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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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책을 덮는 순간, 작품의 구성원들은 모두 '겨울의, 옅은 햇빛을 따라 걸어가는 중'이라고 자의적인 해석을 했다. 각 소설의 인물과 배경은 봄처럼 따뜻하지도, 여름처럼 정열적이지도, 가을처럼 감성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겨울처럼 건조하거나 싸늘한 바람처럼 다가왔고 겨울의 쪽빛처럼 짧고 낡았으며, 선명하지 않았다.
이야기의 끝을 덮으면 매번 겨울의 싸늘한 바람이 마음을 훅, 치고 달아났다. 각 소설의 제목의 단서를 찾으려 좇다가 이리저리 휩쓸리다보면 어느 덧 막장에 다다르고 있는것이다. 맘껏 헤매고 맘껏 방황했다.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느낀 정서와 온도, 채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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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지나고 다음 계절이 온다. 낡은 빛 다음, 쨍한 빛이 온다. 다가올 시간과 그 시간을 지낼 모습은 달라지더라도 어쨌거나 인생은 계속된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각각의 계절'을 '각각의 힘'으로 버텨내야 한다. 그러다보면 '각각의 계절'은 결국 '인생이라는 계절'에 포함되는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