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블로그 대문이름이 산책자이다. 지구라는 세계에 잠시 잠깐이라는 일정 시간 동안 산책하다 사라지는 존재라서 산책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특히나, 밤산책을 즐겨하던 그 당시(이름을 짓던)라서 밤산책자로 하려다 부연설명이 필요없겠다 싶어,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 싫어 산책자라는 이름을 내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제목이 끌렸다.
한국문학작품은 많이 읽지 않았고 흐름도 모르겠고 더구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나 요즘의 작품들은 선뜻 다가가기 어렵다. 작가라는 말 앞에 '젊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나같은 나이든 사람은 읽을 자격이 있겠나 싶어 괜히 심통이 난다. 작가면 작가지 젊은 작가, 늙은 작가, 여성작가, 남성작가, 어린이 작가 등등 뭔가 앞에 수식어가 붙으면 세계가 좁아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읽는 사람은 일종의 프레임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음... 이건 젊은 사람이 쓴거란 말이지, 젊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인가? 젊다는 것은 몇 살 부터 몇 살까지를 말하는 것이지? 등등 잡스런 생각이 들어 처음에 몰입을 방해하긴 한다.
일단, 읽어보면 다른데 말이다.
아무런 사전지식(작가, 작가상, 작품)없이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고, 단편이 주는 묘미가 비교적 살아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내게 단편이 주는 묘미란 찝찝함이다. 시원하지 않는 모든 판단을 망설이게 만들어 찝찝함이 남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단편의 묘미다.
선릉산책 에피소드도 기억에 남았고, 두번째 삶도 좋았다. 선릉산책은 대표작이라서, 자폐인이 등장해서 그랬고 두번째 삶은 스릴러의 요소가 있어 흡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폐인과 한 나절 이상을 함께한 경험(이 있었는지, 간접경험을 했는지...?)은 특수교육기관에서 봤던 자폐 아동과의 기억이 떠올라 자폐라는 특성을 잘 이해하고 쓴 것인지 견주어가며 읽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인을 다룬 드라마가 아니다) 고집하는 행동, 루틴, 강박같은 행동, 자해, 기계음같은 높낮이 없는 말투 등 잘 고증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보통, 상식적인 단어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다르면 배제하고 나아가 차별하는 게으른 의식을 가진 '보통사람들'에서 주인공이 얼마나 진일보했는지도 살펴가며 읽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잣대, 선입견, 선험지식을 얼마나 의식하고 제대로 보려고 하는지 등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문학이 주는 잇점이라면, 봉사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이런 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 읽었다.
직접 그들과 생활을 해보면 오히려 '보통'사람인 나는 한 없는 무능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경험을 마치고 뭔가 '속은 것도 같고 홀린 것도 같은'느낌을 받기도 한다. 또는 어쩌면 그들의 삶은 오해되고 왜곡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끝내 두운이가 강타당했을 타격감을 스스로 느껴보기도
한다. 그런 노력이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결말이 결코 맞닿지 않는 수렴곡선과도 같겠지만 그래도 그런 노력이라도 해야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그런 과정을 충실히 보여준 것 같아서, 거짓이 아닌 것 같아서 선릉산책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