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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어쩌면 유일한 장점(?)은 이 책을 쓴 저자의 솔직함일지도 모른다. '『네이처』가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 과학자로 선정한'에 이런 뜻이 담겨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래서 이 책이 탄생한 거구나. 이 문장을 읽는데 조금 허탈하기도 했다. 권위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싶다. 좋은 책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팔릴 책을 기획하는 것에 뭐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그런 책들이 모두 나쁜 책은 아니니 기획 잘 해서 잘 쓰고 잘 만들었으면 될 일이다.
어찌되었건 출판사의 전략은 맞았다. '『네이처』가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 과학자로 선정한'의 진위야 어떻든 그걸 독자들이 어떻게 해석하건 상관없이 그럴듯한 제목에 이런 배경을 가진 천문학자가 쓴 책이라니 혹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우리에겐 낯설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야가 아닌가? 이미 정재승 박사나 김상욱 씨 등이 닦아놓은 똑똑하고 인간미 넘치며 재미있고 매력적인 과학자들에게 호감이 생긴 상태라 '네이처가 ...선정한 과학자'는 마케팅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암튼 나 역시 제목과 이 문장을 오독해 이 책을 선택한 건 맞고, 뭔가 대단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 생각한 건 오로지 나의 오해였다 치자. 전체 271페이지, 양도 다른 책에 비하면 적은 편인데 (글자도 크고 자간도 넓어 그냥 가볍게 읽는 에세이 느낌이 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야기 중 2부 165쪽까지, 그러니까 (이책의 저자가 이과형이시라니 나도 모처럼 명료하게 계산 좀 하자면) 이 책의 60%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는 동안 당최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책이 책이긴 한 건가? 분명 지은이는 천문학자이며 제목은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인데, 안물안궁한 신변 잡다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다.
박사가 되기까지 과정, 강의할 때의 에피소드, 자기만의 학생 평가 기준 뭐, 이런. 차라리 '천문학자의 전혀 특별하지 않은 생활이야기' 이런 부제라도 달았으면 실망이라도 하지 않았지. 뭔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나 많이 할애한단 말인가? 우리나라 천문학과 우주탐사연구의 문제점을 쬐끔 짚는 듯 하다 어물쩡 넘어가고, 사적인 이야기도 공적인 이야기도 그렇다고 자신의 전공인 천문학도 제대로 이야기 하지 못하고 그냥저냥 친구들과 맥락없는 수다 떨듯 이런 저런 하고 이야기에 제목 지어 배열한 느낌이다.
그냥 평소 자신이 생각했던 단편적인 생각을 책으로 엮기 위해 꾀어 맞춘 느낌이 드는 글들을 160페이지 정도 읽고 나니, 이 책의 기획자나 편집자의 생각도 궁금했다. 지은이 말처럼 어느 날 『네이처』에 인터뷰가 실린 젊은 천문학자라는 네이밍에 의지해 마케팅에 의해 팔릴 책이라 여기고 만든 것이 아니라면 앞의 1부와 2부는 조금 더 정리하고 방향을 잡았어야 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만 원권 지폐의 뒤편에도 우리 전통 별자리가 나온다. 세종 시대의 천문 관측 기기 혼천의와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의 뒷배경에 희미하게 보이는 수많은 동그라미가 바로 한반도의 옛 밤하늘을 담은 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조선 태조 4년(1395) 음력 12월 석판에 새겨 만든 천문도(天文圖)이다.', 네이버천문학백과]다. _211쪽
서양은 개개인이 관측하고 기록을 남긴 데 반해, 동양, 특히 우리의 천문 관측과 기록은 국가가 주도했다. 그래서 천문 기록이 역사서 속에 등장한다. _213쪽
해외 학회에서 만난 다른 나라 연구자들에게 지폐를 자랑하면, 한국 사람들은 천문학에 무척 관심이 많고 지폐에 새길 만큼 중요하게 여기나 보다 하는 말을 듣는다. _215쪽
이런 이야기였다. 칼 세이건도 결코 할 수 없는 이야기, 한국의 천문학자만이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기록에 남겨질 정도로 천문학을 중시했던 우리가 왜 지금은 학자들을 손에 뽑을 만큼 이토록 천문학을 홀대하고 있는지, 천문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학자로서 지난 몇 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느낀 점을 솔직히 말해 주었으면 하는 것은 욕심이었을까? 지은이의 말대로 아직은 현역인 '직장인?"이어서?
4부는 그래도 천문학자이니 태양계 이야기 정도로 마무리는 해야 한다는 의도가 느껴지는 별 감흥 없는 '우리는 모두 태양계'라는 이야기가 50쪽 정도 가장 작은 분량을 차지하고 마무리한다.
타이탄을 연구하고 우리 나리에 몇 안 되는 달 연구가로서 이야기는 그저 인터넷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정도의 너무 평범한 이야기라 왜 이걸 텍스트로 읽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고, 그나마 처음 연구를 했던 타이탄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들어볼 수도 없었다.
지구에서는 해지는 시간이 불과 2분 남짓인 것을 생각해 보면, 수성은 일몰을 사랑하는 게으름뱅이에게는 최고의 행성일지 모른다.
게이름뱅이는 아니지만 슬플 때면 해 지는 걸 보러 가는 어린 왕자에게 수성을 추천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해가 하루에 두 번 지는 명당이 있기 때문이다. (중략) 크레이터 둘레의 언덕에 올라 일몰을 기다리면, 놀랍게도 해가 지는 듯하다가 다시 빼꼼 올라올 것이다. 해가 서쪽에서 뜨다니! 태양은 한동안 가던 길을 되짚어 올아오다가 다시 원래 방향으로 순행한다. 두 번째 일몰이 시작되는 것이다. _163쪽
그가 슬플 때 당장 해가 지도록 명령해 줄 수는 없지만, 해지는 것을 보려면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하는지 넌지시 알려주겠다. 천문학자가 생각보다 꽤 쓸모가 있다. _165쪽
지은이는 스스로 '이과형 인간'이라며 사람의 유형을 구별하지만 솔직히 완전한 이과형 인간도 완전한 문과형 인간도 없을 것이다. 지은이 역시 글 중간중간 자신이 읽은 문학작품을 적절하게 비유하며 충분히 아름답고 상상으로 우주를 바라보게 하지 않았던가? 특히 어린왕자와 수성에 대한 이야기는 과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가미한 참으로 좋은 부분이었다. 난 칼 세이건의 시각이 이 어린왕자를 바라보는 시각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은이의 말처럼 우주를 사랑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그 사랑이 이 책에 담겨있기를 바랬을 뿐이다. 이과형 문체든 문과형 문체든 상관없었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누구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깊이와 통찰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코스모스 』는 코스모스 대로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에서는 우리나라 천문학자 심채경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뿐이다. 기대하는 바가 완전히 달랐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안타까웠던 것은 적어도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에 '네이처가 미래의 달 과학을 과학자로 주목한 천문학자'라는 기대로 이 책을 기꺼이 선택해 준 독자들에게 최소한의 성의와 정성을 들여 쓴 책인지 묻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비해 어쩌면 너무도 미미한 천문학이라는 분야, 탐사 분야, 그리고 천문학이라는 것이 단지 가성비로만 당장의 경제논리로만 따질 수 없는 학문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했다면 어땠을까? 칼 세이건 같은 우주 선동가(?)가 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너무 큰 책이었다. 혹시라도 다음 책을 낸다면 첫 번째 책의 성공으로 또 이렇게 대충(?) 기획하지 말기를 문학동네에도 간곡히 부탁한다.
붙임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에 대한 의견은 순전히 나의 지극히 사적인 생각이다. 이 책 역시 사 놓고 책장에 두었다가 우연찮게 독파에 올라와 『코스모스』도 읽은 김에 이어서 읽으면 좋겠다 싶어 펼쳤다가, 책의 내용에 너무 실망한 것 뿐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코스모스』와 비교하며 읽은 것은 전혀 아니며, 그에 비해 실망했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 읽고 난 후 너무 실망스러워, 다른 사람들은 어찌 읽었으려나 독파에 올라온 의견을 보니, 대체로 평이 좋았다. 역시 책이란 독자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게 분명하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 책도 독자를 잘 만나야하고, 독자도 책을 잘 만나야 한다.
붙임2 : 적어도 이 책에 의하면 '천문학자는 생각보다 직접 별을 보는 일이 없다' 는 건 팩트인 것 같다. 처음엔 제목에 낭만적 은유가 담겨있다 생각했는데 제목은 현실이었다. (물론 다른 뜻도 담았겠지만) 천문대에서 별 한번 보는게 어려운 일이고 직접 보고 관찰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환상이 와장창 깨지지만 그래도 학문적 현실이라니 그렇구나 싶었다. 뭐, 이런일이 천문학에만 있는것도 아니고 살다보면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른 현실, 팩트가 너무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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