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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절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제목처럼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뭔가 말이 안 되는 듯하면서도 또 가만히 보면 다 지금 우리 사회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있을 법한데, 하게 된다. 이게 구병모 작가의 매력인 거 같긴 하다.
<니니코라치우푼타>는 외계인 이야기인가, 미래 사회가 이런 모습으로 변모하려나, 결국 고령화사회가 정점을 찍으며 결국 이런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려나보다 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안에 가족이 있었다. 그냥 외계인이나 미래 사회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엄마와 딸이 그 안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노커>도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유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우리 사회가 무너지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언어와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사회 안에서 사람 간 소통이 부재하는 상황을 절묘하게 보여주며, 그 상황을 만들어나간 똑똑한 노커들의 등장은 뭔가 불안함을 조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결국 소통하지 못하는 사회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을 법한 모든 것>의 꿈 속 상황이나 현실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꿈을 현실에서 다시 재현해 보여주려는 장치에 대한 고민과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지, 결말을 상상해나가는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정말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면서 이 소설에서도 쪽지를 남기며 소통하면서 갖게 되는 상황이 지금 우리 사회의 계층이나 지위에 따른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법>은 공감하며 읽게 되었던 내용이었다. 국민학교 출신자면서 여자로 살아온 삶을 되돌려봤을 때, 뭔가 답답한 면이 있으면서도 그랬지, 싶은 구석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이유를 생각해본 적도 없이 그 시기를 지나왔었다는 생각도 함께 하면서. 그리고, 그런 교육이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또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만들었다.
은 코드와 숫자로 명명되어진 세계에서, 이 소설을 읽으며 나도 혼란스럽고 정리가 되지 않는 듯했다. 기계적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다른 세계에서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문제들의 연속일까. 어려웠다.
<이동과 정동>은 마치 지금까지의 모든 소설을 하나로 완결시켜놓은 듯한 인상이었다. 안개 가득한 미래 사회, 구역을 나누고 그 경계에서 쉽게 사람을 배척하고, 그 배척 속에서 영혼과 신체의 이동을 위해 목숨을 걸로, 그것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고... 뭔가 끔찍하고 무서우면서도 결국 한 가지의 생각으로 모아지는 느낌이었다. 과연,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현실에 있을 법한 일을 꾸며 쓴 글'이라고 '소설'을 정의한다면, 이 소설은 정의에 가장 충실했던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