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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강의 내용에 완전히 몰입한 나머지 자신의 무능력은 물로 자기 자신과 눈앞의 학생들까지 잊어버리는 경험을 종종했다. 완전히 열정에 사로잡혀서 대개 강의의 지침서로 삼던 강의메모마저 무시해 버린 채 말을 더듬기도 하고 손짓을 동원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런 감정의 폭발이 신경에 거슬렸다. 자신이 영문학이라는 주제를 너무 친숙하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강의가 끝난 뒤 학생들이 그를 찾아오기 시작하고 과제물에도 조심스러운 애정과 상상력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그는 기운을 얻어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문학, 언어, 정밀하고 기묘하며 뜻밖의 조합을 이룬 글 속에서 그 무엇보다 검고 그 무엇보다 차가운 글자를 통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는 마음과 정신의 신비, 이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그는 마치 위험하고 부정한 것을 숨기듯 숨겨왔지만, 이제는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다가 대담하게, 종내는 자상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