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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평론집, 영화에세이 등으로 신형철 평론가의 글을 읽어 오면서 유독 시를 읽고, 시를 분석하고, 시를 추천하는 글들을 좋아했다. 예전에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고 리뷰를 쓰면서 신형철 평론가가 읽어 주는 시에 대한 글들만 모아 놓은 책도 만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했었는데, 이번에 바로 그런 책을 만났다. 동서고금 스물다섯 편의 시를 꼽아 실었고, 시의 안팎을 보다 자유로이 오가며 본격적으로 시를 읽어 내는 책이다. 그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고,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며 아래로 쌓여가는 시처럼 인생 역시 그렇게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거라고 말한다. 그렇게 최승자, 에밀리 디킨슨, 에이드리언 리치, 윌리엄 셰익스피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나희덕, 메리 올리버, 한강, 밥 딜런, 레이먼드 카버, 김수영... 의 시를 삶으로 겪어 내고, 읽어 내려간다. 감성적이지만 적확한 문장으로,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지만 깊이 있는 탁월한 문장으로, 단단하고 진지하게, 성실하고 다정하게 시를 이야기한다.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어, 시집을 뒤적이고 싶어졌다. 이 책을 통해 알던 시도 새롭게 다시 겪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