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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사라져버린 이후, 서로의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서로를 탓하며 매일같이 싸우던 엄마와 아빠에게는 떨어져 있을 시간과, 어딜 가든 딸아이의 흔적이 떠오르고 누구를 만나도 딸을 잃은 부모로 기억되는 동네에서 멀리 떠날 계기가 필요했으리라는 걸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언니를 잃은 이후 나는 가족 중 누구든 눈 깜짝할 사이 내 앞에서 없어져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항상 시달리고 있었고, 동시에 언제 사라져버리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조바심을 느끼곤 했다. 살아 있는 게 내가 아니라 언니였다면 언니는 틀림없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면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좋아요." 나는 한국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 만큼이나 낯선 나라로 가는 것이 싫었지만, 엄마 아빠를 위해 그렇게만 말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때로 체념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