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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한강 작가의 표현력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칫 밋밋해보일 수 있는 장면을 이렇게 첨예하게 표현할 수 있나. 단순하게 지나갈 수 있는 장면 하나하나를 섬세하고 섬뜩하게 표현할 수 있나. 모든 장면을 내 눈으로 직접 본 듯이 생생하게 펼쳐져서 플래그를 여기저기 붙여가며 단숨에 읽어나갔다. 오랜만에 흡입력 있는 소설과 마주해서 상쾌한 독서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용 자체도 예민할 수도 있는 문제를 잘 다루기 위해 많이 준비하고 고민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늘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지 않아야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데,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한번 더 그 생각을 가슴 깊이 새겼다. 누구에게나 비극은 예고치 않게 닥칠 수 있다. 슬퍼하고 이겨내는 것도 피해자의 면모이지만 그들도 당연하게 일상을 살아나가야한다.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p.15) 하니까.
책을 읽는 내내 왜 제목이 [작별하지 않는다]일까 계속해서 생각을 했다. 작가가 생각한 의도가 따로 있을 것이고, 나와 다르게 읽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 제목이 작별하지 말라는 당부로 다가왔다.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삶의 흔적에서 눈을 돌리지 말고, 듣기 싫은 소리로 치부하지 말고, 아프게 죽은 이들과 작별하지 말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궁금해 해달라고. 당장의 안락함을 위하여 그들과 작별하지 말라고. 그래서 독자 모두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보이는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보고 가슴에 새겨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담긴 의미가 어떠하든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읽든 나 자신에게는 작별하지 말라는 당부로 다가왔으므로, 내 여력이 닿는 한은 이들과 작별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들의 소식을 궁금해하기로, 나 스스로의 평안을 위해 이들과 작별하지 않기로.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이들을 도울 방법이 있는지, 없더라도 내가 이들의 소식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