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읽고 잊어버렸던 내용을 독파 챌린지로 다시 읽었다. 김훈 작가님의 문체는 감히 따라할 수 없는 먼 거리감이 있는데 어렵다고 느껴지지만 이상하게 그 감정들은 문장을 따라 전해왔다.
소설은 칼의 울음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로 시작한다.
적을 베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 자신의 상징성을 위해 적 가토의 머리를 바치기 바라는 임금은 평양을 거처 의주까지 달아났다. 임금은 용맹한 장수, 강한 신하를 두려워해 때려죽이고 쳐죽이고 고문시켜 죽였다. 적이 오고 무너지는 전장을 지켰던 백성들을 적으로 대했어야 했을까. 정치도 자신의 자리도 그렇게 지켰어야 했을까. 읽으면서 그들이 속으로 삭혔어야 할 울분이 느껴져서 나도 함께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는 아무래도 그 시대 태어났다면 온전한 내 명대로 살긴 힘들었을듯 ㅎㅎ)
의금부 형틀에서의 심문은 무엇을 위해 그리 이순신장군을 고통으로 내몰았는지 헛것을 쫓고 있는 그들이 가엾다고 표현했다. 임금이 장군을 죽이면 적이 오니 죽일 수 없고 적 때문에 이순신은 살아났다. 정치를 모르는 아둔한 자신을 부끄럽지 않아했고, 임금의 장난감을 바칠 수 없는 자신의 무력을 한탄했다. 그들에게 분노하기 보다, 적의 미친 광狂을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힘이 없는 것에 더 집중했다.
기어코 일본놈들은 셋째아들 면이를 죽였다.
아들의 부고를 듣고 몰래 숨어 울어야만 했던 이순신장군도 아버지였다.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백성도, 도굴된 선왕들의 무덤이 있는 방향으로 절을 올리던 왕도, 모두 울음이 끊이지 않는다. 머리와 코가 잘린 백성들의 시체들이 수도 없이 쌓이고 먹을 게 없어 아이를 잡아먹는 사람들을 보며 이순신 장군은 몸속의 울음, 슬픔을 칼을 갈며 마음을 다잡는 듯하다.
끝도 없이 다가오는 적과 먹을 것이 부족하여 굶어죽고 이질에 걸려죽는 백성들의 죽음도 끝이 없다. 언제 이 이야기가 끝나는지 한숨나올 정도로 고통과 막막함뿐인 시간 속에서 죽기만을 바라고 있을 수는 없어야 하는 위치에 있어 더욱 슬펐다. 우수영을 떠난다고 했을 때 백성들은 모두 짐을 꾸리고 뗏목을 타며 이순신장군을 따랐다. 임금보다 자기 자신을 이순신에게 맡겼던 백성들은 자식모두 잃고 더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울부짓으며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이 있을지 생각할 수는 있었을까. 암울했다.
이순신 장군의 감정들이 많이 드러나 있어 난중일기를 들추어본 것 같았고,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자신의 감정을 눈에 보이는 자연에서 찾은 문장들이 어찌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자 한 듯하다. 이렇게라도 해야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밝음을 붙잡았었길 생각해본다.
어둠 속에서 안개는 무겁게 가라앉았다.(P250)
누운 몸이 물결에 흔들렸다.(P257)
나는 달빛에 젖어 잠들었다.(P257)
해 지는 쪽 하늘에서 붉은 노을과 검은 노을이 어지럽게 뒤엉켰다.(P266)
부하들이 목이 잘린 얼굴의 눈과 마추진 그 장면, 적군인지 포로인지 소금에 절여진 쭈글해져 나이조차 가늠이 안되는 얼굴은 아무리 전쟁이다 할지라도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몸이 움직이는 데로 하지 않으면 미쳐버렸을 것 같은 상황들이 많았다. 이순신장군은 삼시세끼 밥을 다 먹었다. ‘말없이 그냥 먹었다’는 부분에서도 공감할 수 있듯이, 그들이 내게 준 위치는 밥벌이를 하라고 만든 자리이니 살아 바다로 나가야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이 문장을 읽는데 갑자기 김훈 작가님이 프강페 줌토크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강연에 불려 나오셨다는 말씀...지긋지긋하다는 밥벌이 말씀과 함께ㅋㅋㅋ)
소설은 들리지 않는 사랑 노래 " 노량의 물결은 사나웠다." 로 끝이 났고, 이순신장군은 끝없이 밀려드는 적군들은 미칠 광狂자를 쓸만큼 그들이 무엇을 위해 저렇게 목숨을 바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임금에 의해 무의미하게 죽기보다 전장에서 수긍할 수 있는, 누구도 애도하지 않는 자연사로 기록되더라도 죽음의 방식을 본인은 적에 의해 죽음을 원했다. 그렇게 바다에서 칼의 노래는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