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이 쌀을 씻어 밥을 짓는 동안 나는 장터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송여종이 멍석을 구해와서 깔아주었다. 나는 멍석에 누웠다. 백성들은 다투고 웃고 욕지거리를 하며 하루의 거래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밥이 익는 향기 속에 시장기가 솟아났다. 그리고 노곤한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장터 멍석 위에서 잠들었다. 봄볕이 이불처럼 따스했다. 송여종이 잠든 나를 흔들어 깨웠다.
-간이 어떠하실는지.....
아낙이 멍석위에 밥상을 차렸다. 나는 그 장터에서 송여종.안위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아낙이 국밥 열 그릇을 말아서 나룻배편으로 격군들에게 보냈다. 말린 토란대와 고사리에 선지를 넣고 끓인 국이었다. 두부도 몇 점 떠 있었다. 거기에 조밥을 말았다. 백성의 국물은 깊고 따뜻했다. 그 국물은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온 진액처럼 사람의 몸 속으로 스몄다. 무짠지와 미나리 무침이 반찬으로 나왔다. 좁쌀의 알들이 잇새에서 뭉개지면서 향기가 입 안으로 퍼졌다. 조의 향기는 안쓰러웠다. 아낙이 뜨거운 국물을 새로 부어주었다. 나는 짠지를 씹었다. 봄의 짠지 속에 소금의 간은 가볍고 싱싱했다. 안위는 세 번째 밥그릇을 내밀었다. 국에 만 밥을 넘길 때 창자 속에서 먹이를 부르는 손짓을 나는 느꼈다. 나는 포식했다. 돌아갈 때 안위는 쌀 한 봉지를 아낙에게 주었다. 어디가지 가시는지, 내려갈 길에 또 들르시라고 아낙은 말했다. p.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