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깊은 곳에서 치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 밀려내려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나오려 했다. 하루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면의 죽음을 알아챈 종사관과 군관들은 내 앞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옆방에서 종사관 김수철이 보고 서류를 부스럭거리고 있었고 마루 밖 댓돌 앞에는 창을 쥔 위병이 번을 서고 있었다. 저녁때 나는 숙사를 나와 갯가 염전으로 갔다. 종사관과 당번 군관을 물리치고 나는 혼자서 갔다. 낡은 소금창고들이 노을에 잠겨 있었다. 나는 소금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니 위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죽여 울었다. 적들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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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국경 근무를 마치고 나서도 나는 승진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종팔품이었다. 종사품 수군 만호가 되어 남해안 발포진에 부임했을 때, 처음 보는 바다는 외면하고 싶도록 두려웠다. 나는 바다와 맞선다는 일을 상상할 수 없었고, 그 위에서 적과 싸운다는 일도 내용과 질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바다는 다만 건널 수 없고, 손댈 수 없는 아득함으로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때 발포진은 남루하고 쇠락한 포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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