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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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았으므로 안다. 조선 수군들은 물 위에 떠다니는 시체를 갈고리로 찍어 건져올려서 갑판 위에서 목을 잘랐다. 목을 자르기 위하여 작두를 따로 배에 싣고 다니는 자들도 있었다. 목이 잘린 시체들은 다시 물에 던져졌다. 잘려진 머리는 피아를 구분할 수 없었다. 그 머리와 코의 숫자로 양측 지휘관들은 승진했고, 장려한 수사로 넘치는 교서를 받았다. 경상 해안을 뒤덮은 사체는 순천, 보성만 연안까지 떠내려와 밀물에 실려 갯벌에 처박혔다. 시체는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가까이 가보면 구더기들이 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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