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서 기남은 우경이 자신에게 원하 는 건 그저 우경을 가만히 두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경의 인 생에 감히 개입하지 않는 것, 우경이 자신에게 바라는 건 그것뿐 이라고. 어째서 자신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일이 제임스의 어머 니에게는 가능했을까. 우경은 자신에게서 어떤 결정적 결점을 발 견했던 걸까. 자신의 존재 자체에 묻은 얼룩 같은 것...... 그것을 기남은 알 수 없었다. p.317
그렇게 대답하고 기남은 불현듯 이해할 수 있었다. 부끄러움. 마이클의 말이 맞았다. 기남은 부끄러웠다. 우경의 눈에 비칠 자 신의 모습이 그애가 오래전 자신을 멀리 떠난 일이, 진경의 알 코올중독이, 두 아이가 결국 화해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른 사실 이...... 기남은 부끄러웠다. 남편에게 단 한 번도 맞서지 못하고 살았던 시간이 그런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란 것이...... 기남 은 부끄러웠다. 부모에게 단 한순간도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의 존 재가 하지만 그 사랑을 끝내 희망했던 마음이...... 기남은 이 모 든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서. 기남은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p.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