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희영은 서로의 얼굴을 봤다. 몇몇이 그 구호를 산발적 으로 외치는 동안 당신은 몸을 돌려 누군지 모를 사람들에게 말했 다. 구호 중단하세요. 구호 중단하세요. 그러나 당신의 말을 진지 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국어로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당신은 인파 속에서 허우적대면 서 말했다. 구호 중단하세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희영은 이야기했다. 그 구호보다도, 주변 에서 옅게 퍼지던 웃음소리가 더 기억에 남는다고. 강간이라는 말 이 집회에 활기를 주던 그 순간을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당신은 얼음장 같은 희영의 손을 잡고 인파를 빠져나왔다. p.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