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그의 작품을 읽어본 것도 처음이었다. 작가의 이름이나 소개는 많이 보았고, 이 작품도 입소문을 통해 알고는 있었으나 아직 읽어보진 못한 터였다. 그러다가 독파로 겸사겸사 읽게 되었는데 여러모로 독특한 작품임에는 틀림없었다.
일단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가녀장'의 시대라니. 듣도 보도 못한 말이지만 그 단어는 뇌리에 팍 꽂힌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했던 '가부장'을 비꼰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의 의도적으로 이 신조어를 만들었다. 그리고 얼음에 꽂아놓은 이 깃대로부터 금이 갈라져 나가듯 작품은 거침없이 전개된다.
딸이 사장이고 모부가 피고용인이다. 가계는 딸의 작가로서 버는 돈과 출판사업을 통해 운영된다. 그러다 보니 모부는 딸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속마음을 달랐을 것이다.
여기에서 '모부'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서부터 작가의 시각을 느끼게 한다. 작품 곳곳에서 나타나지만 작가는 페미니즘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TV 생방송 프로그램 출연 시 브래지어 착용을 두고 PD와 갈등을 빚는 것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냥 밑바탕에 깔고 있을 뿐, 노골적으로 나타내지는 않는다. 비록 불편한 마음을 갖는 독자가 있을지라도 말이다.
이 이야기는 모두 허구다. 그런데 마치 진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앞서 내가 그에게 속아 넘어갔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의 입담이, 그리고 그 능청스러움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본인의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1인 출판사를 만들기도 했었고, 부모님과 함께 가족 기업 형태로 운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비록 각색된 부분이 많다고 하더라도 더 그럴싸하게 들렸던 듯싶다.
물론 자신의 모부를 그렇게 묘사하고 희화화한 것은 실제와 다르겠지만, 그것 역시 상당 부분은 실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그는 그가 가장 자신 있었던 내용에 대해서 잘 써 내려간 것이 성공의 이유일 것이다.
이 작품은 키득거리면서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다. 독자에게 무엇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나열되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가상의 가녀장 사회를 그려냈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가족 안에서의 권력 구조, 서열, 그리고 무엇을 바탕으로, 무엇을 위해 그러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틀이 뒤틀리자 우리의 시각과 생각도 같이 뒤틀리는 듯하다.
그러나 역할의 변화와는 별개로, 가족 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비록 그것이 작위적인 서열 설정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존중은 필요하다. 자녀가 부모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그러한 것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