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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가 엄마의 자아를 꺼내면 슬아도딸내미의 자아를 서슴없이 꺼낸다. 딸내미의 자아란받고 또 받으면서도 투덜대는 자식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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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상을 해보기로 한다. 하루두편씩 글을 쓰는데 딱 세 사람에게만 보여줄수 있다면 어떨까. 세 명의 독자가 식탁에 모여앉아 글을 읽는다. 피식거릴 수도눈가가 촉촉해질수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읽기가 끝나면 독자는 식탁을 떠난다. 글쓴이는 혼자 남아 글을 치운다. 식탁위에 놓였던 문장이 언제까지기억될까? 곧이어 다음글이 차려져야하고, 그런 노동이 하루에 두번씩 꼬박꼬박반복된다면 말이다.
그랬어도 슬아는 계속 작가일수 있었을까? 허무함을 견디며 반복할수 있었을까? 설거지를 끝낸 개수대처럼 깨끗하게 비워진 문서를 마주하고도 매번 새 이야기를쏠 힘이 차올랐을까? 오직 서너 사람을 위해서 정말로 그럴수 있었을까? 모르는 일이다. 확실한건 복희가 사십 년째 해온 일이 그와 비슷한 노동이라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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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슬아는 미안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미안함보다 민망함이 앞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때때로 너무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