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디언'이라는 용어가 있다는 것을 이번 독파 챌린지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W.G 제발트라는 작가를 처음 들어본 나는 '제발디언'이라는 용어에 큰 호기심을 느끼고 챌린지를 신청하게 되었다.
그런 명칭까지 붙을 정도의 열성팬이 있는 작가의 글이라면 한 번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제발트라는 작가 자체도 처음 들어보는데, 이 작가가 언급하는 작가들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겨우 이름을 들어본 '장 자크 루소' 역시 작품으로 접해봤던 적은 없었기 때문에 마찬가지였고.
처음 들어본 작가가 처음 들어본 작가와 작품에 대해 - 거기다 중간 중간 다른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막 튀어나온다 - 쓴 글이 잘 읽힐 리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이 책이 나를 세차게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그러다 조금씩 책 속에 들어갈 수 있었고, 잘 모르는 내용에, 더 알 수 없는 주석을 읽으면서도 내용에 빠져들 수 있었다.
모르는 작가에 대한 글이라고 생각하고 읽기를 포기한 대신,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살아 생전에 절필을 선언한 작가도 있다고 알고 있다.
예를 들면 '패싱'을 쓴 넬라 라슨 같은.
하지만 이 책에서 제발트는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떻게 해도 그만 둘 수 없는 강박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영혼에서 어두움을 몰아내주기도 하지만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가게도 하는 그런 것이라고.
그의 그런 생각은 이 책에서 언급하는 모든 작가들에게서 나타난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여기저기 쫓겨다니다 시피 하면서도, 가난에 몰려 정신적으로 고통받으면서도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 글을 써나간다.
그리고 그런 작가들에 대해 제발트는 평론하기 보다는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다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는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닌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사실 하이퍼 리얼리즘 작가에 대한 글에서는 그런 '천형'이 느껴지진 않았다.
갑자기 왜 작가가 아닌 화가 이야기를?? 이라는 의문은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서 해결되었다.
그 의문이 해결되면서 이 책의 각각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추리소설이라는 느낌까지 받았다.
너무 좋아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와로가 마지막에 모든 사건을 해결하듯이 화가에 대한 제발트의 설명으로 인해 앞의 모든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완성되는 그런.
이 책을 읽으며 제발트가 한 여러 이야기들 때문에 소개된 작가들의 글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특히, 방금까지 의미심장한 문장이었는데, 어느샌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는 로베르트 발저의 글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을 받는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인데, 로베르트 발저 역시 그와 비슷한 느낌일지 아니면 전혀 다르게 나를 빠져나갈지가 궁금하다.
이 책 한 권으로 제발디언이 되는 것에는 실패한 것 같다.
하지만 새롭게 알게 된 작가로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매겼다.
W.G 제발트의 본격적인 소설을 한 번 찾아 읽어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