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트레버의 글 속에는 부인이 떠났어도 끝까지 딸의 곁을 지켜주는 아버지들이 있다. 딸은 그 보살핌이 싫었을까 좋았을까 하는 걱정들이 살짝 보이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흔들리는 모습까지도 끌어안고 견딜 수 있게 바라봐주는 아버지는 멋있다.
책에서는 장소에 깃든 추억들이 자주 등장한다.
시간이 지나 사람이 바뀌어도 장소는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 그 기억을 알아차렸을 때에만 특별해질 뿐, 그림자처럼 음각하여 존재할 뿐이라는 듯. 사랑의 대상들은 왜 하나같이 나쁜 남자 인걸까.
말년에 쓴 글들이라 그런지 인물들이 시련에도 충격적 사실에도 큰 흔들림 없이 초연한 듯한 모습이다. 한 편 한 편에서는 큰 재미나 감동이 없지만 다 읽고 나서 묵묵히 견디고 있을 인물들이 매력으로 기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