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이는 모든 확신을 잃은 사람처럼 떨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 민이와 나 사이의 거리는 한 걸음도 채 되지 않 았다. 어쩌면 나는 민이에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좀더 기다려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감정이 찾아올 거라고 이야기해주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대신 '우리가 뭘 확신할 수 있겠니'라는 흐리멍텅한 말을 중얼거리고 방을 나왔다. 곧 흐느끼는 소리가 벽을 넘어 들려왔다. 나는 끝내 어떤 위로도 해주지 않았다. 64% (119/185)
"그게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것뿐이야."
"왜 할머니한테 가짜 편지를 쓴 거야?"
고모는 미소를 지었다.
"즐거움을 위해서. 만약에 우리가 원치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작은 위안도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잖니." 66% (123/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