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런 거지(So it goes)"
-부조리와 모순의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반전(反戰)소설-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많은 사상자수를 기록한 드레스덴 폭격의 참상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뭐, 그런 거지." 라고 하나의 도시가 하루 아침에 폭격으로 '달 표면 같이 폐허로 변해버린 참상의 현장 속에서 남는 것은 고통과 슬픔뿐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뭐 그런 거지."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뭐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식으로, 어쩔 수 없거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처음 내가 이 책 『제 5도살장』을 읽었을 때,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 라고 생각하며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난 지금은 책 속 주인공 빌리 필그림처럼 " 뭐, 그런 거지." 라고 말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106번이나 반복되는 "뭐 그런 거지" 라는 말이 106번 각각 다른 상황 속에서 사용되었고, 그 의미도 정말 각각 다름을 알게 되었다.
참혹했고 끔찍했던 드레스덴 폭격을 소재로 해서 커트 보니것 작가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상흔을 특유의 익살과 유머로 풀어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을 우는 심정이랄까. 그 웃음 속에서 비통함과 처절함이 느껴진다.더군다나 이 책 속 빌리 필그림처럼 제 2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가해서 그 고통을 실제로 겪은 커트 보니것에게는 그 의미는 남다를 것 같다. 어찌 그 고통과 슬픔을 이루 다 말할 수 있으랴. 너무 끔찍하고 참혹하기에 유머와 익살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어쩌면 작가 자신의 모습을 대변한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제 2차 세계대전 벌지 전투의 독일군 전선 후방으로 배치가 된다. 그런데 작가는 드레스덴 폭격까지 상황을 죽 전개하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여행을 통해 삶의 단편들을 제시해준다.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풀려났다.' 라는 문장을 통해 빌리는 자유롭게 과거로도 갔다가 미래도 가고, 전쟁 상황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그런지 전쟁의 참상을 느낄 새도 없이 '뿅' 하고 사라져서 과거에 짠 나타난다. 처참한 전쟁 상황 속 전우의 죽음에도 그저 그는 이렇게 말할 뿐이다.
'뭐 그런 거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체념과 포기, 허무 등 여러 다양한 감정들이 느껴진다. 열 마디, 백 마디 말보다 뭐 그런 거지 한 마디가 그 모든 허무와 체념을 뒤덮는 것 같다.
시간여행과 함께 빌리 필그림은 트랄파마도어 행성인에게 납치가 되어 그 행성의 동물원에 갇힌다. 마치 우리 속에 갇힌 원숭이처럼 빌리는 트랄파마도어인들에게 보여진다.
이렇게 외계 행성의 동물원에 갇혔다가, 갑자기 전쟁 후 검안사가 되었다가, 뉴스가 넘치는 뉴욕으로, 시카고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며 정신없이 빌리의 이야기는 펼쳐진다.
이렇게 유쾌하고 황당한 이야기 속에서도 여전히 빌리는 그 주소를 잊을 수 없다. "슐라흐토프-픤프' (제 5도살장)을 말이다.
전쟁으로 인한 비관론과 허무주의, 전쟁에 대한 반대 등 이 모든 메시지를 커트 보니것은 익살과 유머로 포장하여 이 책 『제 5도살장』에 담아놓은 것 같다. 커트 보니것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반전소설임은 분명하다.어느 누가 전쟁의 참혹함을 익살과 유머로 표현하겠는가.
그랬기에 나에게 읽는 것에 도전할 가치가 있고, 제독, 삼독을 부르며 충분히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책과 함께 『제 5도살장: 그래픽 노블』을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그래픽 노블이라서 생생한 그림을 통해 시간여행을 통한 빌리의 삶을 따라가기가 더 쉬웠고 내용을 이해하기도 더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