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의 짤막한 생애 동안 손수 만들고 모아놓은 쓸모없는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는 바로크 판타지가 그 자체로 이미 일종의 죽음을 탐하는 유행이었다면, 켈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어느 스위스 아가씨의 상자세계 속에 간직된 그 환상은 볼프강 슐뤼터가 쓰고 있듯이, 놀리는 듯하면서도 신중한 서사적 태도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그리고 슐뤼터가 마찬가지로 언급하고 있듯이 그 서사적 태도가 자신의 아이러니적 성격을 획득하는 방식은 사물과의 거리두기가 아니라,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바라본 지나치게 선명한 이미지들을 통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