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유품은 풍성한 물기를 두르고 우리 앞에 갑자기 나타난다. 일상 속에서 그 사람이 들고 다닌 것. 그걸 쥐던 손가락의 모양과 그것의 색채. 그때 그 물체는 단순한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수많은 장면과 시간을 거느린 의미의 망이다. 그걸 꼭 쥔 채로 잠이 들었다. 깨어나면 사정은 달라져 있다. 그 많던 물기와 의미는 사라져버리고 손안에는 바싹 말라 볼품없어진 한줌의 물체만 남겨져 있다. 그렇게 쓸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물건이 있다. 처치 곤란한 상태로 썩지도 않는 것. 그걸 쥐고 앞으로 계속 살아야 한다. 온갖 마음의 험한 자리를 닦아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