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녀의 극심한 고통을 사를이 짐작조차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고 믿는 그의 확신이 그녀에게는 어이없는 모욕이나 다름없었고, 그런 안심이 배은망덕처럼 여겨졌다. 대체 누구 때문에 정숙하게 굴고 있는 것일까? 샤를이야말로 모든 행복의 장애물, 모든 비참의 원인 그리고 자신을 온통 옥죄고 있는 이 복잡한 코르셋의 벨트 버클에 달린 날카로운 핀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곤욕스러운 처지에서 생긴 온갖 증오를 샤를 한 사람의 탓으로 돌렸다. 증오심을 줄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그 소용없는 수고가 절망감의 또다른 이유로 작용해 그와의 간격을 그만큼 더 벌어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부드러운 태도에서도 반발심을 느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가정생활은 그녀를 사치스러운 공상으로 밀어붙였고, 부부간의 미지근한 애정은 불륜에 대한 욕망으로 그녀를 내몰았다. 그녀는 더 정당하게 샤를을 미워하고 복수할 수 있도록 그가 자신을 때리기라도 했으면 하고 바랐다. 때때로 에마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끔찍한 가정에 스스로도 놀랐다. 그런데도 줄곧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은 행복하다고 거득 중얼거리고, 행복한 척을 하고, 행복할 거라고 여기도록 내버려둬야 하다니!
에마는 자신의 이런 위선이 혐오스러웠다.(p157)
2. 루돌프가 말했다. (...)우리의 진정한 의무는 위대한 것을 느끼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것이지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굴욕과 온갖 사회적 인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열정이야말로 이 지상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것이고, 영웅적 행동과 열의와 시와 음악과 예술, 요컨대 모든것의 원천 아닙니까? (p206)
3. 에마는 맞은편에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와 동일한 수치심을 공유하는 대신 그와는 다른 종류의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그동안 이미 수없이 그의 무능함을 확신했으면서도 그런 사내가 해맬 수 있으리라고 여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도데체 그녀가(그토록 똑똑한 그녀가!)이렇게 또다시 착각한 걸까? 게다가 도대체 무슨 딱한 집착으로 스스로의 삶을 끝나지 않는 희생의 구렁에 빠뜨려버린 것일까? 그녀는 사치를 좋아하는 본능적인 성향, 내면의 온갖 결핍감, 남루한 결혼, 집안 살림, 상처입은 제비처럼 진창으로 처박힌 꿈, 자신이 욕망하고 억눌렀던 모든 것, 가질 수도 있었을 모든 것을 떠올렸다. 그런데 왜? 대체 무엇 때문에? (p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