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p~115p. 켈러는 1850년대 중반에 취리히로 돌아와 이 모범적인 공동체를 가까이에서 연구할 수 있게 되자, 국민주권이라는 기본 원칙의 무조건적인 지지자였음에도 이렇게 사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조차 피할 수 없었던 역사의 흐름에 대한 회의감에 이따금씩, 아니 갈수록 더 강하게 엄습당했다. 19세기 독일의 걸출한 작가들 가운데 젊은 뷔히너를 제외하면 아마도 켈러가 유일하게 정치적 이상과 정치적 실용주의를 조금이라도 이해했던 작가였을 것이다. 켈러는 이런 이해력 덕분에 개인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이 점점 더 배치되어간다는 사실을, 그리고 새롭게 쟁취한 시민적 자유와 권리에서 당시 막 형성되기 시작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은 사실상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또 소설 『마르틴 잘란더.Maria Salantdery에 나오듯, 공화국의 이름이란 민중이 빵과 언제든 바꿔 먹을 수 있는 돌멩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래서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시대에 정치적 피로감이 더해가는 상황은 끊임없이 생계 걱정을 안겨주고 그로 인해 중간 계층마저도 불리한 거래를 떠안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을 꿰뚫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