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 읽어보진 못했다. 얼마전에 '알쓸인잡'에서도 소개된 바가 있었고, 유명한 작품이다보니 내용은 대략 알고는 있었다. 그러다가 북클럽 6기 웰컴도서로 신청했고, 마침 독파 챌린지로 올라와서 겸사겸사 독파로 읽게 되었다.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해도 텍스트를 통해 읽는 것은 또 달랐다. 알려진 대로 이 책은 그의 자전적 소설이면서도 또 허구이기도 하다. 트라팔마도어 외계인, 시간 여행은 명백한 허구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이 그것들이 주인공 빌리 필그림이 실제로 경험한 것인지 아니면 상상속 혹은 그의 기억 속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그것이 실제였다고 주장하고 스토리에서도 사실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를 제외한 (그리고 몬태나 와일드핵이라는 여배우와 극히 일부의 사람들)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이 책은 반전소설이라고도 하지만 사실 반전은 그다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는다. 전쟁 속에서 그가 겪었던 것들,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묻는다. 드레스텐 폭격은 연합군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는 독일군에게 잡힌 미군 포로이면서도 드레스덴 폭격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사실 전쟁의 비극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으며,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다.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는, 인간성이 가장 밑바닥으로 치닫는 극한 상황이 된다. 그런면에서 그가 전쟁 기간 중 겪은 것 것은 오히려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그들의 문화와 사상을 접하게 되고 또 동물원에 갇혀 지내는 것보다도 더 끔찍한 경험일 것이다.
그런게 그러한 경험이 SF와 맞물렸다. SF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SF적인 요소가 이 작품속에서는 중요했고 또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특히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오가거나 거의 동시에 경함하는 것은 그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하는 방법일 것이다.
전쟁이후 그는 그의 삶을 살았지만 사실 정상적인 삶으로 보여지진 않는다. 그의 가족들에게도, 그를 대한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보여졌을 것이다. 그는 PTSD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방법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이 책에는 많은 죽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한 죽음 또는 죽음이 암시되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뭐 그런 거지'라는 말이 나온다. 원문은 'So it goes'인데 시니컬하면서도 그러한 것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는 트라팔마도어 외계인의 방식이었지만. 그런데 그것도 계속 반복되지만 꽤나 중독성이 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얘기 조차 그렇게 가벼운 농담 혹은 유머가 되어버린다. 그러한 블랙코미디의 요소는 이 책의 비극을 한층 더 강화한다.
독특한 작품이었지만 읽어볼만한 작품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명작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