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벌써 겨울이 가고 봄이 왔습니다. 빛은 뒤집히는 순간 가장 밝게 부서진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몇 번의 시험을 본 끝에 저는 일본에 적응해 한 사람의 몫을 하게 되었습니다.
벚꽃이 둥근 봉우리를 밀어올립니다. 허공은 온통 두근거려요. 꽃잎이 벌어지는 순간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될 것 같습니다. 훈풍을 맞으며 강가를 걷는데도 어느 때보다 깊이 서늘함을 느낍니다.
시를 쓰는 일은 그만두었습니다. 동이 트도록 책상 앞에 앉아 하나의 문장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던 날들이 이제는 꿈같습니다. 그때는 두 손을 깊은 숲속에 묻고 돌아와 새 손이 돋아날 때까지 아무것도 안을 수 없었습니다.
한 번 손을 포기할 때마다 한 편의 시를 얻었던 셈이지요. 어떤 때는 너무 간지럽고 아팠습니다. 하는 수 없이 어둠 속 에 향처럼 꽂혀 타들어가기만 했습니다. 생각이라는 것이 무한히 가속되며 돌고 있는 미친 원 같았습니다.
선생님 세상의 모든 것은 한 자리에 있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언젠가 그 말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미혹된 자는 굽 은 등을 갖게 마련이니까요.
심장이 있던 자리에 한 마리 새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잠결에 날아와 둥지를 틀더니 나가지 않아서, 쫓아내려 애를 쓰다 그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름을 붙여주고 나니 이제는 이국의 유일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것은 때로 삶이 아닌 죽음에 육박한다는 것을.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채 살 수 있었다면 저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봄은 그토록 서늘하기에 유리처럼 빛날 수 있다고.
pp.94-95 <사쿠라노 요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