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의 박차를 가하는 붉은 소녀가 있다. 소녀의 이름은 사과 발끝이 얼어서 빨갛게 부풀던 기도였다. 여태 어디있 었니. 두 손을 잃어서 밤새 강가를 헤맸어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둥글게 번지던 밤. 사각의 방에 누워 사과는 사라지 는 것들에게 이별을 고했다.
허물어지는 건 재미있지. 죽기 위해 하루하루 산다는 거 말야. 매번 내 손등을 찰싹 때리며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만, 나는 자꾸 요동치는걸요. 멈출 수 없는 것이 핏속을 돌아다 녀서, 아픈데 너무 아픈데. 커다란 의자에 앉아 두 발을 흔드는 나는 엉망진창 문제아일 뿐이고.
나무 위에 올라가면 하얗게 빛나는 지붕이 보였다. 손으 로 잡을 수 있을 만치 작게. 몇 번을 움켜쥐어도 내 것이 될 수 없는데. 해가 질 무렵 창은 불타는 것처럼 보인다. 아름 다운 네 사람이 원탁에 앉아 따듯한 것을 먹고 있을 거야. 그중 하나가 될 수만 있다면. 차가운 흙속에서 잃어버린 조 각을 꺼낼 수 있다면.
나선의 박차를 부수는 붉은 소녀가 있다. 소녀의 이름은 물위에 쓴 글씨, 주저앉은 체온, 거꾸로 매달린 종.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믿기에 아픔도 좋아요. 축축한 귀. 사각 안 으로 빨려들며 소녀는 눈을 감는다. 돌을 꼭 쥔 채, 안녕, 안녕, 끊임없이 돌아오는 나선의 감각으로 빈다. 한밤중 멀리 서 들려오던 개 짖는 소리, 영혼이 펄럭이는 소리.
이제 왜곡된 빛이다.
사과는 오래전 나의 이름이었다.
p.38-39 <적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