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는 내 남자 역사의 재현부〔소나타 형식에서 제시부의 주제를 형태를 바꾸어 반복·강화하는 부분〕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강하다고 생각하면 나는 어색해지고 모질어졌다. 그의 약한 면을 보면 나는 기꺼이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었다. 단 하나 달랐던 건 데이비와 있을 때만은 처음으로 이 배치가 완벽해졌다는 점이다. 내가 어디에 구속되었는지를 보았고, 그것을 내보이면서 부끄러워했다. 드디어 눈이 환해져 나의 실체가 보일 때면 얼마나 화가 나고 두려웠던가! 그리고 데이비를 통해서 나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나는 데이비를 알았던 것이다. 그 내면의 핵심까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의 식성과 취향을 좋아했고 그의 두려움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것들은 내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데이비가 어쩌다가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를 알았고 그의 옆에 있으면 내가 어쩌다가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얼마 동안 이렇게 껄끄러움 없이 같은 생각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출신과 태생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오는 조용한 이해와 다정함이 우리 사이에 흘렀다. 사랑을 나누거나 잠들어 있는 모습은 우리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서로의 몸을 팔다리로 감은 채 얼굴을 마주하고 잤다.
(196p)
-알라딘 eBook <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