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존재의 순간들'을 자주 생각한 날들이었다. - 내겐 그런 순간이 전혀 없었으므로. 그러다 어느 순간 - 어쩌면 하루아침에 - 거리에서의 우연한 마주침을 계기로 깨닫게 됐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내면의 공백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걸. 한 주가 지나고 또 다른 마주침이 있은 후 이상하게도 생기가 감도는 느낌이 들었다. 세 번째 마주침 만이었다. 피자 배달부와 유쾌한 대화를 주고받은 뒤 가던 길을 계속 가는데 좀 전에 주고받은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되풀이됐고 그때마다 새삼스럽게 웃음이 나면서 충만한 감정이 점점 더 깊어졌다. 무언가 다듬어지지 않은 풍성한 에너지가 가슴속 텅 빈 공간에서 부풀어오르기 시작됐다.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흘렀고 공기는 따스하게 빛났으며 그날의 색채도 차츰 선명해져갔다. 입안엔 산뜻함이 감돌았다. 심장을 지그시 눌러주는, 신기하고도 포근한 감정은 기쁨과 매우 흡사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나도 예상치 못했던 예리한 감각으로 그것의 의미 대신 인간 존재의 경이에 주목하게 됐다. 내가 내 살갗을 메우고 현재를 점유하던 게 바로 그 거리에서였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