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거짓의 조금>이라는 산문집을 인상 깊게 읽었던 적이 있다. 시인의 글들은 유려하고, 아름답지만 지나치게 죽음과 허무와 맞닿아 있어 심연의 끝까지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작품 역시 여타의 여행 에세이들과는 다른 감성과 깊이로 우리를 낯선 공간으로 초대한다. 하노이를 걷는 일은 뜨거운 햇빛에 몸을 녹이는 일이라고, 그렇게 며칠을 걷다 보면 햇빛이 몸을 관통해버린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리고 하염없이 자고 일어나 쓰다 만 페이지를 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매일 쓸 수 있을까, 와 죽지 않고 매일 살 수 있을까, 라는 두 개의 질문들을 짐짓 모른 척 하던 시인은 하노이에 와서야 몸을 녹이고, 마음을 풀고, 두려워하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디에나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느슨하던 마음이 이내 선연해진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언젠가 하노이에 가게 되면 아하 커피에서 초콜릿 맛이 진하게 혀 끝에 감도는 블랙 아이스 커피와 올 데이 커피의 후레시 망고가 든 레몬 티를 마셔보고 싶다. 우리는 살아 있고, 그래서 여행할 수 있으니까. 살아 있는 사람에게 행운처럼 주어지는 여행을 꿈꾸며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