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궁은 세자의 생모에 불과하다. 생모는 어머니라기보다 신하일뿐이다. 세자와 신하를 자주 만나게 해서는 안된다. 만난다면 빈궁이 임금을 뵙는 엄격한 예법에 따라야 한다.' 등등의 주장을 펴면서, 선희궁의 행동을 불편하게 했고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경종측 내인들이 어린 사도세자 동궁에 다시들어오게되어 그사이 영빈이된, 원래 자기들보다 아래였던 선희궁을 무시.
임금인 영조에게 까지 제약을걸고..사도세자는 어릴때부터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거의 받지못함.
1746년 12살때 동궁에서 경춘전으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