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십여 년 전, 이 한 문장에 이끌려 책을 구입했다. 하지만 그 때는 아직 노년이라는 시기가 먼 훗날의 일처럼 느껴졌고, 두려움마저 관념 속에만 존재하고 있어서 끝까지 읽지 못했다. 이번에 #독파챌린지에 <에브리맨>이 있어서 다시 펼치니, 누렇게 빛바랜 책장이 ‘이제는 읽을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노년은 이제 내가 곧 대면할 현실이다.
<에브리맨>의 주인공은 이름도 없이 “그”라고 호명된다. 주인공 아버지의 보석상 이름이기도 한 ‘에브리맨’은 그가 겪는 일련의 과정들이 특정한 사람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라 ‘에브리맨’, 즉 ‘보통사람’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겪는 ‘통과의례’임을 드러낸다. 그래서인지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자주 쉬어야 했고, 때로는 우울감이 엄습했다.
33년생인 “그”는 아트디렉터로 성공한 유대계 중산층 백인 남성이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으로 “비열하고 무책임하고 경박스러울 정도로 미성숙한 성적인 모험가”이면서 “비행과 실수로 더 유명했던 연쇄남편”이었지만 중년 이후 겪은 여려 차례의 수술로 그는 “인공장치들의 창고”이자 “약의 저장고”가 되었다.
잠시 그의 수술 이력을 살펴보면, 42년 가을에 처음 탈장 수술을 하고, 67년에 급성충수염과 복막염 수술을 받았다. 89년에는 심장 때문에 5중 바이패스 수술을 받고, 98년에 신장동맥폐색으로 신장동맥성형수술을 받는다. 이 때 첫 번째 스텐트가 삽입된다. 99년에 왼쪽 경동맥 폐색으로 경동맥 내막 절제술을 받고 2000년에 혈관형성수술, 2001년과 2002년에 스텐트 삽입 수술을 받는다. 그에게는 총 여섯 개의 스텐트가 삽입되었는데, 2003년에는 제세동기 영구삽입 수술을 받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2004년 오른쪽 경동맥 수술 중 사망한다.
“심장마비.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p.188)
그는 책을 읽는 누구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기 힘든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수술 과정을 지켜보면 그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가 나의 부모님 같기도 하고, 나와 배우자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노년에 완전히 붕괴된 것은 수술이 아니라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는 서로 베풀기도 하고 받을 수도 있는 친밀한 동반자에 굶주려 있었다.”(p.141)
한 남자의 노년에 나 자신을 투영하는 과정은 유쾌하지 않았지만, 문장을 완전히 장악한 작가의 적확한 표현 덕분에 요소요소 재밌었다. 가령, 다이아몬드를 “불멸의 흙 한 조각”으로 표현한다거나, 주인공을 “연쇄남편”이라고 부르는 부분은 깨알 같은 재미였다.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할 때 찾아오는 느낌”은...... 질투이다.
‘노년은 과연 대학살일까?’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대학살에 준하는 재앙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어쩌다 보니 요즘 노년에 관한 책을 계속 읽고 있다. 노년과 돌봄에 관해 진지해질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