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경 이 작품을 알게 되었고 전자책으로 구매하여 순식간에 읽었다. 기괴한 스토리인데다 전개방식과 내레이션도 독특했지만 흡입력이 있었다. 그리하여 천명관이라는 작가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추가하게 되었고,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 중에서는 <고래>를 능가하는 것은 없는 듯하다. 그만큼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7년쯤 지나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언젠가는 다시 읽어보고 싶었지만 쉽사리 손이 가질 않았는데 얼마전에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다고는 해도)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최종후보까지 올랐다는 소식에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독파에서도 챌린지를 진행해서 마침내 다시 읽게 되었다.
전자책이기에 7년전이나 지금이나 책 자체가 달라진 것은 없지만 (책을 보는 기기는 달라졌어도)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많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는 스토리가 어떻게 이어질까가 궁금했었고, 작가의 필력이 어느 정도인지가 궁금했었다. 물론 천명관작가의 필력은 다시 읽어도 여전히 인정한다. 말그대로 '찰지다'는 표현이 딱이다. 외설스러운 장면들까지도 마치 판소리나 탈춤의 해학으로 넘기듯 가볍게 넘어간다. 그런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이 작품의 독특한 특성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단 그런 것들뿐만 아니라 정치, 종교, 도덕, 가치관, 통념까지도 쉽사리 뒤엎어버린다. 형식도 자유자재다. 그래서 더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의 질주는 흐트러짐이 없다. 그러한 서사의 힘은 끝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장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하이라이트를 쳐가며 읽었는데 완독 후 세어보니 거진 150개 정도의 문장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인생에 대한 많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비록 노파, 애꾸눈 딸, 금복, 춘희, 그리고 수많은 등장인물들 중에서 과연 행복한 사람이 있었을까 싶지만 그들 개개인에게도 행복했던 시기도 있었을 것이다. 마치 고래가 바다에서 힘차게 헤엄치듯이 나아가던 시기처럼.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고 결국엔 잡혀서 피범벅이 되어 해체되듯 그들의 삶은 또다른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일까? 금복이 가장 핵심에 있겠지만 춘희 역시 주인공이라 할 만하고, 다른 인물들 역시 주인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엉켜 거대한 덩어리로 이우러진 것이 '고래'처럼 느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