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 그 모든 호들갑은 우리의 주인공 춘희의 인생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졌다. 그녀는 영웅도 아니었고 희생자도 아니었다. 그녀는 뚜렷한 목표를 가진 장인도 아니었으며 숭고한 예술가는 더더욱 아니었다. 우린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어떤 삶을 원했는지 알 수 없다. 그녀는 우리와 달랐으며 다르다는 이유로 평생 고독 속에서 살았다. 춘희를 둘러싼 하많은 얘기들은 제 스스로 생명을 얻은 아메바처럼 무한히 확장해가고 있지만 정작 진실은 그 옛날 지상에서 사라진 무림비급처럼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녀는 세상에 벽돌을 남겼을 뿐이다. 그리고 그 벽돌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그림을 남겼을 뿐이다. 벽돌에 담긴 그림 속엔 장차 벽돌이 세상에 나가 자신의 마음을 전해주기를 바라는 춘희의 간절한 바람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p.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