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종료일보다 이틀이 더 지나서야 완독했다. 판결문과 각종 판례가 등장하는 중반부에서 읽는 속도가 느려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매일 꾸준히 읽지 못했다. 이렇게 걸출한 이력을 남긴 사람의 삶 속에 파고들기에 2주는 너무 짧은 시간인 것 같다. 노토리어스 RBG라는 간지 철철 나는 호칭과 뿔테안경 너머의 강인한 눈, 몇 가지 잘 알려진 발언들 외에는 잘 아는 것이 없었던 인물이라 여러 모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일단 내가 트위터나 여러 매체를 통해 RBG를 처음 접했던 시기가 바로 미국에서 그가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고 젊은 세대에게도 존경받으며 이런 책까지 나오게 된 그때쯤이라는 게 재밌었다. 멀리서나마 거의 실시간으로 나도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세대들에게 진보의 아이콘 같은 존재로 떠올랐지만 한편으로는 중도적인 성향으로 비춰지기도 할만큼 굉장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인 것도 흥미로운 점이었다. 그는 강철같은 페미니스트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삶에서 겪은 모든 차별과 싸우며 당연한 권리를 얻고자 하는 소수자들을 실질적으로 도왔다. 처음부터 그렇게 확고한 신념을 지녔던 게 아니라 살면서 배우고 부딪히며 점점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갔다는 게 좋았다. 그치만 가장 놀랍고 자극이 된 건 그의 넘치는 에너지와 지구력과 결단력이었다. 2주동안 이 책 한 권 읽는 것도 힘들어하는 나와 너무나 다른 종류의 사람이지만 그래도 영감과 에너지를 많이 얻었다. 나도 팔굽혀펴기 20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한국의 판사들도 거의 모르는데 미국 대법관들의 얼굴과 이름을 알게 되다니. 한 분야에서 지워지지 않을 상징성을 지닌 사람의 파워가 이렇게 세다.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책을 꺼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