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야기는 다시 우리가 한동안 잊고 있던 가엾은 우리의 주 인공. 춘회에게로 돌아간다. 그날 아침, 차가운 눈밭에서 싸늘한 아이의 주검을 끌어안고 울부짖던 춘희는 아이를 골짜기 아래 작은 언덕에 묻고 공장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무덤 앞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었으며 더이상의 통곡도 없었다. 그리고 이듬해 봄까지 그녀는 어두운 방안에 누워 곡기를 끊은 채 죽음을 기다렸다.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형벌을 더이상 감당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다. 세 달이 넘도록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지만 그녀의 지독한 생명력은 스스로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따뜻한 봄이 되자. 그녀는 죽음을 포기하고 다시 먹이를 구하러 섰다. 그녀는 더이상 트럭 운전사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 역시 자신을 떠나간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를 원망하지도 않다. 아니, 그녀는 자신을 임신시켜놓고 떠난 사내의 무책임과 자신의 고통을 연관지어 생각할 줄 몰랐다. 그녀에게 있어서 고통은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