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나 공포 영화를 보면 가장 먼저 죽는 사람들이 있다. 역할이라기보다는 극의 긴장감 고조를 위한 장치에 가까운 사람들. 너무나도 쉽게,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희생되는 무명의 인물들.
중학교 2학년 때, 전쟁 영화를 보다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주인공을 향한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비켜 가면서 바로 뒤에 있던 사람의 가슴을 명중하는 장면이었다.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주인공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과 동시에 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영화를 보는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내 멋대로 그의 일생을 상상하면서 마음 깊이 슬퍼하고 또 슬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