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소설 특유의 철학적, 사변적 서술로 초반에 여러번 위기가 왔지만, 박종대 번역가님 줌토크가 미션 중도포기를 극복하는 데 꽤 도움이 되었다. 예전에 몸이 아팠을 때 꾸역꾸역 읽어 나가다가 어느 순간 재미를 느꼈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떠오르기도 했다. 인간 이성의 승리를 뒷받침했던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시민민주주의, 민족주의,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사회주의, 정신분석학, 다양한 예술사조까지. 제1차 세계대전을 1년 앞둔 1913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카카니엔)의 수도 빈은 이 모든 것들이 혼재된 그래서 실체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거대한 문화 용광로이기도 했다. 사유하는 존재로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 벅찬 주인공 울리히는 '특성'(여기서 특성은 개별 인간의 고유성이나 개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사회에서 어떤 직업적, 사회적 특성으로 체화된 바를 의미함)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기득권 주류사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성 없는 남자'라는 묘한 삐딱선을 타는 인물이다. 1년 뒤 다가올 세계대전을 생각하면 한판 허황된 잔칫상 준비와도 같은 평행운동은 자의식 과잉으로 한껏 부풀어오른 이상주의자, 자기 이해관계로 동상이몽 모여된 지식인 권력자 주도의 말잔치, 구체적 변화와 실천 없는 일장춘몽으로 끝날 것임을 예감케 한다. 디오티마, 아른하임, 라인스도르프 백작, 클라리세와 발터, 레오 피셀과 그의 딸 게르다, 흑인 하인 졸리만과 라헬까지 다양한 인물군상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