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엄마 나이쯤 되면 알게 될 거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약간 심심할 정도로 평범한 인생이라는 거.”(p.82)
열일곱 살, 고등학생 입장으로 읽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결국 수현이의 엄마에게 감정을 이입해버렸다. 자신이 지극히 평범해서 심심하다고 생각하는 수현. 나도 그런 수현을 보며 ‘평범하게 산다는 게 제일 어려운 거야!’라고 말하고 있다. 설상가상. 1학년 9반의 아이돌 같은 존재인 한정후가 나올 때마다 지금 일곱 살인 우리 아들이 연상되다니! 열일곱 살 고등학생 되기는 실패다.
그래도 꿋꿋이 까마득한 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면서 비교하며 읽었다. ‘나는 과연 몇 번째 피규어였을까? 나는 어디쯤 서 있었을까?’ 나 역시 특별 한정판은 아니었기에 고요나 정후보다 수현과 우연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스스로 빛을 내지 않아도 밝게 빛나는 별이 있다고 말해 주던 다정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신은 스물세 번째 피규어라고 했던 이우연의 말도 떠올랐다. 나 또한 그 어디쯤 서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엄마의 특별 한정판은 아니지만 엄마에게 꼭 필요했던 피규어다. 그걸로 됐다. 그러면 충분했다.”(p.189)
소설 속 수현은 사랑스럽고 단단한 사람이다. 내가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피규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느꼈다. 이미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런 수현의 곁에는 엄마와 친구 지아가 있다.
<고요한 우연>이란 제목을 생각해보았다. 요즘 중의적인 제목이 종종 눈에 띈다. 고요와 우연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기도 하고, 고요만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잠잠하고 조용한 상태’의 ‘이우연’으로 볼 수도 있다. 고요와 우연을 둘 다 사전적으로 해석해서 잠잠하고 조용하게 뜻밖에 일어난 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눈에 띄지 않던 이우연이 시나브로 수현에게 ‘순간순간’ 전해져서 알고 싶은 아이가 된 것, 그래서 이제 수현이에게는 은고요만큼 특별 한정판 ‘이우연’이 됐다고 생각했다. 지극히 평범하고 심심한 사람도 누군가에게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될 수 있다. 그걸로 됐고, 충분하지 않을까.
나에게는 아이돌인 일곱 살 우리 아들은 가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한다. 무한만큼, 무한의 무한의 무한만큼 좋다고 한다. 나도 한 사람에게는 특별 한정판이라 결혼이라는 걸 했고, 우리에게 유일한, 특별 한정판 아들을 낳았다. 남편과 아들도 자신이 최소한 나에게는 특별 한정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이 우리를 줄지어 번호를 매기려고 시도하더라도, 단단하게 지지하고 보듬어 안을 것이다. 태어나 우리 셋, 우연히 만났지만 이렇게 만나서 참 다행이다.
5월, 눈부시게 싱그러운 초록이들을 바라보다 내가 문득 시들시들하다고 느껴질 때 어울리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