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마족의 사악하고 극악무도한 모습은 곧 인간의 극악무도하고 사악한 일면을 비춰주는 거울과 다름없음을 깨달았고, 인간의 본성에도 똑같은 무분별이 있어 무자비하고 괴팍하고 악의적이고 잔인함을, 마족과의 싸움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싸움과 닮았음을, 따라서 마족은 현실인 동시에 추상적 개념임을, 그들이 하계로 내려오면서 이 세상에서 무엇을 근절해야 하는지 보여주었음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바로 비이성이었고, 비이성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는 흑마족의 이름이었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테리사 사카의 자기혐오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녀가 이미 알듯이 제로니모 자신도 내면에 깃든 마족 자아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마족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의 무분별도 물리쳐야 비로소 이성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