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말로 아무런 목적도 없는, 고작 영광처럼 허무맹랑한 목적을 내세운 기계를 만드느라 고생고생하며 기나긴 세월을 허비했어. 그런 노력이 자멸의 길인 줄도 모르고 내가 만들려 했던 기계는 바로 내 삶이고, 기계 따위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목적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영광을 차지하는 일이었어. 나야말로, 대장장이나 선생이나 철학자가 아니라 나야말로 질병과 건강의 차이를, 전염병과 치료법의 차이를 깨닫지 못했던 거야. 너무 비참해서 나는 아버지가 딸을 멸시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건강한 상태라고, 오히려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게 재앙이라고 믿었어.